10년 만에 만나고 왔습니다. 기분이 이상해서 퇴근하고 집에서 맥주 한 캔 따놓고 끄적여봅니다. A선배는 대학 때 사진 동아리에서 만났습니다. 성적은 늘 고만고만... 남들은 스펙 쌓느라 다 한다는 대외활동이나 공모전에도 심드렁하고, 혼자 학교 벤치에 누워서 책 읽고 필름카메라 딸랑 들고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날씨 좋으면 자체휴강 하고 여기저기로 혼자 잘 놀러다니는. 그때 당시엔 다소 한량으로 보였습니다. 속으로 저렇게 살면 나중에 뭐하려고? 싶은 삐뚤어진 마음이었죠. A선배가 졸업하고 한참 뒤 고향에 있는 작은 출판사를 들어간다고 했을 때도 다들 A선배답다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웃음엔 무시가 섞여있었죠. 저는 A선배와 정 반대로 살았습니다. 악착같이 원하던 기업에 들어갔고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려고 주말도 없이 일했습니다. 연봉 오르는 게 제 삶의 이유이자 낙이었고 '니가 동기 중에 제일 잘 나간다'는 말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더군요. 근데 작년부터 이상해졌습니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숨이 막히고, 회의 들어가기 전엔 심호흡을 해야 합니다. 병원에선 번아웃이니 불안장애니... 제 발목 붙잡는 소리를 해대도 악착같이 버텼으나, 결국 주변에서 휴직을 권유하더군요. 지난 주 가족 일로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는 길에 문득 A선배가 생각이 나서 연락해 보았습니다. 흔쾌히 만나자고 하더군요. 그 때 그 출판사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고, 퇴근하면 근처 강변 산책하고, 주말엔 동네 초딩들한테 사진 가르쳐준대요. 결혼도 해서 애기도 있더라고요. 하나도 안 변했더군요. 오히려 더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밥을 먹으며 제가 요즘 힘들다는 얘길 하니, 선배는 그저 묵묵히 들어주기만 하다가 "너는 예전부터 늘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잖아. 근데 도착하면 뭐 하고 싶은지는 생각해봤어?"라고 하더군요. 돌이켜보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승진, 연봉, 성과만 있었지 그걸 다 이룬 뒤의 저의 모습은... 글쎄요.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그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전 선배가 야망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선배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일찍 알았던 사람일 뿐이었다고.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엔 야망이 없어보였던 것일 뿐, 자기 삶에 대한 욕심은 누구보다 분명하고 또렷했던 거죠. 남이 정해준 트랙 위에서 달리기만 했던 건 저였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살아온 게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한 덕분에 얻은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얼마나 빨리 달리냐보다 어디로 달리느냐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일단 회사에 휴직 신청을 할 예정입니다. 휴직 기간 동안 거창한 계획을 세우진 않으려고요. 대신 선배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그 사진 동아리에 있었는데요. 살기 바빠서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그때 셔터 누르던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하나도 안 났던 것 같습니다. 아마 본가 창고 어딘가에 있을 카메라부터 꺼내보려 합니다. 그게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이 정해준 방향이 아니라 제가 고른 방향으로 걷는 첫걸음은 되지 않을까요? 이제는 조금 늦더라도 도착지를 정하고 달리고 싶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주제
야망 없다고 무시했던 선배의 10년 뒤...
10월 15일 | 조회수 1,309
매
매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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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Csj
9시간 전
한 편의 단편소설 같네요.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한 편의 단편소설 같네요.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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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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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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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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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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