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훈훈썰💝

퇴사 각 재던 PM, 살벌하던 PD가 청담동으로 불러내 벌어진 일

10월 13일 | 조회수 75
님
금 따봉
님향

그 시절 우리 팀 PD랑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딪혔다. 일정 쪼이고 마일스톤 방어해야 하는 PM 입장에서, 허구한 날 기획 뒤집고 디테일 타령하는 PD는 솔직히 개발의 주적 그 자체였다. 슬랙 텍스트 한 줄 오갈 때마다 서로 날이 바짝 섰고, 회의실 문 닫고 언성 높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 이 사람이랑은 진짜 일 못 해먹겠다. 조만간 들이받고 팀을 나가든 이직을 하든 해야지' 속으로 사직서 각만 날카롭게 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 무렵, PD한테서 메신저가 툭 왔다. "남향 님, 오늘 저녁에 청담동 몇번출구 앞으로 좀 오시죠. 초밥이나 먹읍시다." 청담동? 동네 판초밥집도 아니고 웬 청담동이지 싶었다. '단둘이 불러내서 본격적으로 각 잡고 털려는 건가', '담판이라도 짓자는 건가' 온갖 불길한 시나리오를 쓰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약속 장소에 갔다. 도착한 곳은 작은 빌딩 3층 조용한 고급 일식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셰프가 정중하게 맞이하고, 바 카운터에 예약된 두 자리가 정갈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살면서 오마카세라는 걸 내 돈 주고는커녕 구경도 못 해본 나였다. 셰프가 차례대로 생선 이름을 설명하며 한 점씩 눈앞에 올려주는데,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는 식감에 1차로 넋이 나갔고, 대충 머릿속으로 계산서 견적이 나오면서 2차로 동공 지진이 왔다. '이 사람이 대체 나한테 왜 이러지? 마지막 만찬인가?' 정적을 깬 건 PD의 한마디였다. 술 한 방울 안 곁들인, 맨정신의 담백한 고백이었다. "그동안 나 때문에 맘고생 많았죠, 남향 님. 윗선 압박은 심하고 퀄리티는 욕심나니까 나도 모르게 조급해서 날선 채로 굴었어요. PM 입장에서 마일스톤 지키느라 혼자 똥치우고 방패막이 해준 거 다 아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제대로 못 했네." 항상 모니터 너머로 고집불통 완장 차고 있는 줄만 알았던 PD의 속사정이 하나둘 털어져 나왔다. 맨정신이라 더 진솔했다. 나 역시 "PD님 일정 자꾸 엎으실 때마다 진짜 프로젝트 터지는 줄 알았다"며 그동안 쌓아둔 서운함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비싼 참치 뱃살이 한 점씩 넘어갈 때마다 서로를 찌르던 날카로운 오해의 각들이 신기할 정도로 둥글게 깎여나갔다. 살벌했던 긴장감은 사라지고, 결국 프로젝트를 같이 완주해야 하는 두 사람의 끈끈한 전우애만 남았다. 진짜 리더는 말로만 때우지 않고, 가장 정중한 방식으로 마음을 먼저 열어준다는 걸 그때 배웠다. 지금도 초밥 냄새만 맡으면, 그날 내 분노를 싹 녹여버렸던 인생 첫 오마카세와 PD의 쑥스러워하던 표정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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