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제

월급만큼 가난해지는 청춘들

10월 10일 | 조회수 24
남
남지만작가

월급날 아침, 서준은 눈을 뜨기도 전에 습관처럼 휴대전화부터 집어 들었다. 오전 6시 32분. 은행 앱 화면에는 반가운 숫자가 떠 있었다. 2,870,000원. 세후 월급이었다. 서준은 잠시 그 숫자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한 달 동안 온몸을 던져 번 돈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제 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통장에서 빠져나가기도 전에 이미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숫자에 불과했다. 월세 75만 원, 관리비와 공과금 15만 원, 통신비, 교통비, 보험료, 학자금 대출 상환금. 여기에 지난달 카드값과 각종 구독료까지 더하고 나면 월급의 절반 이상은 구경만 하고 사라질 판이었다. 서준은 계산기를 두드리다 말고 휴대전화를 맥없이 내려놓았다. 월급날은 기쁜 날이 아니었다. 아주 잠시 부자가 되었다가, 가장 빠른 속도로 다시 가난해지는 날이었다. 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오늘만큼은 정말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출근을 포기할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월급이 적다고 회사를 관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통장이 비어갈수록 월세는 꼬박꼬박 돌아왔고, 월세를 내기 위해서라도 그는 다시 출근길에 올라야 했다. 가난은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게으를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서준이 다니는 회사는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중견기업’으로 소개되는 곳이었다. 회사가 망할 가능성은 적었지만, 그렇다고 직원들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질 가능성도 희박해 보였다. 입사할 때 선배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처음 몇 년만 버텨봐. 연봉도 오르고, 돈도 좀 모이고, 제법 살 만해져.”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5년쯤 지나면 통장에 최소 3천만 원쯤은 모여 있을 줄 알았다. 결혼 자금도 차곡차곡 모으고, 작더라도 전세 보증금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입사 3년 차인 지금, 보증금을 모두 끌어모아 손에 쥐고 있는 돈은 고작 1,200만 원이 전부였다. 연봉은 해마다 조금씩 올랐다. 문제는 물가가 연봉 상승률을 비웃듯 저만치 앞서 달아난다는 점이었다. 월급이 오르면 형편이 조금 나아질 줄 알았으나, 늘어난 수입은 귀신같이 늘어난 생활비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삶에 남은 것이라고는 회사 명함 한 장, 뻐근해진 목 통증, 그리고 조금씩 줄어드는 학자금 대출 잔액뿐이었다. 가끔은 자신이 인생을 어디서부터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남들처럼 공부했고, 남들처럼 취업했으며, 남들처럼 성실하게 매일 출근했다. 지각 한번 없이 맡은 일은 어떻게든 끝까지 해냈다. 그런데도 왜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는 끝내 답을 찾지 못한 채, 다시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사를 향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동료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밥 먹으러 갈 사람?” “가자. 오늘은 내가 쏠게!” “네가 쏘긴 뭘 쏘냐. 만 원짜리 국밥 먹고 또 카드 할부로 갚으려고?” 사무실에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서준도 어색하게 웃는 척하며 가방을 챙겼다. 하지만 동료들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는 사이, 그는 슬그머니 방향을 틀어 계단으로 향했다. 오늘 그의 점심 메뉴는 편의점이었다. 삼각김밥 하나, 컵라면 하나. 합계 3,800원. 전자레인지 안에서 컵라면이 돌아가는 동안, 서준은 머릿속으로 셈을 했다. 회사 앞 국밥을 먹으면 10,000원, 편의점에서 해결하면 3,800원. 하루에 6,200원을 아끼면 한 달이면 12만 원 남짓을 절약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커피 몇 잔 값에 불과하겠지만, 서준에게는 한 달 통신비와 교통비를 내고도 남는 거금이었다. 밥 한 끼를 먹으면서도 일일이 돈을 아꼈는지 따져봐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그때 동료 민호가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 여기 있었냐?” 민호는 서준의 앞에 놓인 컵라면을 보며 혀를 차더니 말을 건넸다. “야, 회사 앞 국밥도 이제 만 원이야. 진짜 먹고사는 게 일이다, 일.” “그러게 말이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밥값만 사장님처럼 고고하게 오른다.” 민호가 맞장구를 치며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냈다. 그러더니 결연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나 이번 달부터 진짜 커피 끊는다.” “네가? 하루에 세 잔씩 마시던 애가?” “그러니까 말이야. 한 잔에 5천 원씩 잡아도 하루 1만 5천 원이야. 한 달이면 30만 원 가깝다고. 이제 집에서 직접 내려 마시려고.” “잘 생각했네. 커피 도구는 사 놨고?” 민호가 순간 머뭇거리더니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응.. 텀블러도 하나 샀어.” “얼마 줬는데?” “18만 원.” 서준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야, 커피를 끊은 게 아니라 커피 사업에 투자한 거 아니냐?” “나도 알아! 나도 안다고!” 민호가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 힘이 빠진 목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냥.. 그 순간에는 나 자신한테 그 정도 선물은 해주고 싶었어.” 서준의 웃음이 순간 싹 거두어졌다. 민호는 멋쩍게 웃으며 라면을 집어 들었다. 방금 한 말이 별것 아니라는 듯 덤덤히 다른 화제로 넘어갔지만, 서준의 귓가에는 그 말이 오래도록 잔향처럼 남았다. ‘나 자신한테 그 정도 선물은 해주고 싶었어.’ 돈을 아끼겠다고 커피를 끊으면서도, 정작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한 달 식비에 맞먹는 텀블러를 사는 그 마음. 어쩌면 그건 철없는 낭비가 아니라, 이 팍팍한 삶을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고 간절한 몸부림일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서준도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세일 상품을 몇 번이고 비교하다가 결국 필요치도 않은 물건을 사기도 했고, 야근으로 지친 날이면 배달 앱을 열었다. 턱없이 비싼 배달비가 아까운 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 차려준 따뜻한 밥을 먹으며 편안해지고 싶어 결제 버튼을 누르곤 했다. 돈을 아끼는 일에는 손익계산이 환했지만, 제 마음 하나 위로하는 일에는 이토록 서툴렀다. 가난이란 단순히 통장 잔고가 비어 있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때로는 스스로에게 작은 기쁨 하나조차 허락하지 못한 채 자책감에 시달리는 상태에 더 가까웠다. 서준에게 있어 돈은 연애에서도 늘 무거운 걸림돌이었다. 2년 동안 만난 여자친구 수진과의 대화는 언제부터인가 늘 비슷한 궤도를 맴돌았다. “우리도 이제 결혼 생각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해야지..” “그런데.. 집은 어떻게 하지?” 서준은 끝내 대답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수진 역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른 아침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주말이면 남들처럼 근사한 곳에서 영화를 보고 맛집을 찾고 싶었지만, 데이트 비용이 부담스러워 늘 무료 전시회나 공원 산책길을 검색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런 소소한 데이트도 좋았고,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만으로는 도무지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이 명확해졌다. 전세 보증금은 자고 일어나면 올랐고, 대출을 받자니 매달 돌아올 원리금 상환이 숨을 막히게 했다. 결혼식 비용부터 가전제품, 신혼 생활비까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수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 가끔 너무 무서워. 우리가 이렇게 지독하게 노력하는데도.. 계속 제자리일까 봐.” 서준은 괜찮다고, 조금만 더 버티면 나아질 거라고 수진을 안심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제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는 말을 차마 뱉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수진이 먼저 이별을 고했다. “서로에게 너무 무거운 숙제가 되지 않도록.. 잠시 놓아주는 게 맞는 것 같아.” 서준은 그녀를 잡지 못했다. 사랑은 둘이 함께 따뜻한 밥을 먹게 해줄 수는 있었지만 그 밥값을 대신 내주지는 못했고, 손을 잡고 미래를 꿈꿀 수는 있었지만 당장 머물 방 한 칸의 보증금을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수진이 떠난 뒤, 서준은 퇴근 후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곤 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배달 앱과 은행 앱이 번갈아 떠올랐지만 어느 쪽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못했다. 회사 상황 역시 녹록지 않았다. 그토록 고대하던 승진 명단에서 그의 이름은 깔끔하게 빠져 있었다. 팀장은 미안하다는 기색도 없이 "내년엔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라는 상투적인 말로 상황을 무마했다. 서준은 그 말을 믿고 싶었지만, 믿는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자격증 교재를 펼치고 인터넷 강의를 켰다. 졸음이 쏟아져도 눈꺼풀을 올려가며 견뎌냈다. 지금의 월급과 위치에 안주한다면 평생 이 쳇바퀴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달 뒤, 서준은 마침내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한 회사로 이직하는 데 성공했다. 연봉이 400만 원 올랐다. 친구들은 부러움 섞인 축하를 건넸다. “야~ 이제 숨 좀 쉬고 살겠네!” 서준도 희미하게 웃었다. 이번만큼은 정말 삶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새 회사에서 첫 월급을 받은 날,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월급은 늘었지만 출퇴근 거리가 멀어져 교통비가 눈덩이처럼 늘었다. 야근이 일상화되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택시를 타거나 배달 음식을 시키는 횟수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버는 돈이 늘어나자 예전 같으면 참았을 지출에도 점차 무뎌져, 고생한 자신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손쉽게 돈을 썼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통장을 확인했을 때 잔고는 이전 회사에 다닐 때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서준은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어 조용히 한 줄을 적어 내려갔다. ‘사람은 딱 제 월급만큼 가난해지는구나.’ 그는 한참 동안 화면 속 문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연봉이 오르면 삶에 여유가 생길 거라 믿었지만, '더 많이 버는 것'과 '더 여유로워지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늘어난 월급은 귀신같이 그에 맞춘 소비와 형편을 불러왔고, 통장 잔액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서준은 4년 동안 쓰던 전자레인지를 중고 거래 앱에 3만 원으로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낡아빠진 운동화에 오래된 가방을 멘 스물세 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은 전자레인지 문을 몇 번이고 열었다 닫으며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이거 오래 쓰신 건가요?” “한 4년 정도 썼어요. 그래도 작동은 아주 잘돼요. 내부도 깨끗하게 닦아두었으니 바로 쓰셔도 됩니다.” 서준이 직접 전원을 넣어 작동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자,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꺼내 건넸다.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3만 원. 저녁 한 끼를 해결하고 며칠 간의 교통비로 쓰기에 딱 좋은 돈이었다. 거래 완료 버튼을 누르고 돌아온 며칠 뒤, 그 청년에게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혹시 제품에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 약속 장소로 나갔다. 청년은 낡은 운동화를 그대로 신고 작은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형님, 이거 받으세요. 전자레인지 값이에요.” “무슨 소리예요? 돈은 그날 다 받았잖아요.” “사실.. 그날 제가 가진 돈 전부가 딱 3만 원이었어요. 편의점 알바를 해서 겨우 모은 돈이었거든요. 집에 몸이 안 좋은 어머니가 계시는데, 제가 일 나갔을 때 식은 밥을 드시는 게 마음에 걸려서 꼭 사드리고 싶었어요.” 청년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다른 중고 거래 때는 다들 돈만 받으면 돌아서기 바빴는데, 형님은 안쪽까지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아주시고 사용법도 친절하게 알려주셨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너무 감사했어요. 돈을 더 드리려는 게 아니라, 나중에 저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도움을 주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그래요.” 서준이 한사코 봉투를 밀어 넣으려 하자, 청년은 난처한 듯 웃으며 뜻밖의 고백을 했다. “사실 저, 요즘 면접에서 계속 떨어져서 자괴감만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형님이 '물건이 오래되고 좀 긁혔어도 제 기능만 잘하면 충분히 가치 있다. 사람도 꼭 새것처럼 완벽할 필요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참 큰 위로가 됐어요. 면접에 떨어진다고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덕분에 용기 내서 이력서를 다시 썼어요.” 서준은 봉투를 쥔 채 한참 동안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자신은 늘 제 삶에서 부족한 통장 잔고, 없는 내 집, 지연되는 승진, 불확실한 미래만을 세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자신이, 어떤 누군가에게는 정직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 존경스러운 어른이었던 것이다. 그는 처음으로 제 삶을 타인의 온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통장 잔액은 초라했지만, 결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는 아니었다. 며칠 뒤, 서준의 휴대전화 화면에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떠올랐다. 수진. 〈헤어지고 나서야 알게 됐어.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너무 겁이 났던 거라는 걸. 내가 먼저 놓아주면 둘 다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건 우리가 함께 버텨낼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기해버린 거였어.〉 서준은 문장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그동안 그는 수진이 떠난 이유가 오직 ‘돈’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하며 자책했었다. 하지만 수진 역시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봐 똑같이 두려웠던 것뿐이었다. 서준은 천천히 답장을 적어 내려갔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여전히 돈 걱정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 그런데 이제는 알아. 우리가 모든 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뒤에야 행복해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럼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좋아. 대신 비싼 데는 안 된다.〉 〈걱정 마. 나도 통장 잔고가 나를 걱정하는 처지니까.〉 두 사람은 회사 근처의 자그마한 분식집에서 만났다. 떡볶이 한 접시와 김밥 두 줄, 어묵 몇 개. 대단할 것 없는 소박한 식사였지만, 서로의 눈을 맞추며 참 오랜만에 마음 깊이 웃을 수 있었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산더미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행복’을 먼 미래로 미룰 필요는 없었다. 그 무거운 문제들을 해결하려 애쓰다 잠시 서로를 놓쳤을 뿐, 모든 것이 해결될 때까지 사랑을 유예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요일 아침, 지하철 안은 여느 때처럼 피곤에 지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저마다의 무거운 사정을 짊어진 채 같은 칸에 타고 있었지만, 저마다 다른 무게의 삶을 견뎌내는 중이었다. 서준은 손잡이에 의지한 채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자신이 행복의 자격 조건을 너무 가혹하게 설정해두고 살았다는 것을. 집을 마련하고 돈을 더 벌어 안정을 찾은 뒤에야 비로소 웃을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 조건들은 끝없는 굴레와 같았다. 물론 돈은 아주 중요하다. 돈이 없으면 기회가 줄어들고 사랑만으로 월세를 낼 수도 없다. 다만, 돈이 조금 부족하다고해서 내 삶 전체를 '실패'로 단정 지을 필요는 없었다. 비싼 해외여행 대신 소소한 동네 산책을 즐기고, 분식집에서 웃으며 저녁을 먹고, 오래된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은 초라한 궁색함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 안에서 삶을 존엄하게 지켜내는 아름다운 방식이었다. 지잉~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청년 도윤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형님! 저 취업했습니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드디어 해냈어요. 형님이 해주신 말씀 마음에 품고 다시 도전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꼭 제가 밥 사겠습니다^^〉 서준은 화면을 바라보며 답장을 보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밥은 네가 사되, 절대 비싼 데는 안 된다. 나도 월급 들어오자마자 순식간에 실종되는 사람이니까.〉 도윤에게서 웃는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서준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하나씩 가만히 꼽아보았다. 성실히 일할 수 있는 건강한 몸,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나누어 먹는 동료 민호, 다시 손을 꼭 잡아준 수진, 그리고 무심코 건넨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일어서 준 청년 도윤. 이것들이 당장 가난을 없애주지는 못할 것이다. 다음 달에도 어김없이 월세는 나갈 것이고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을 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이 삶의 존엄과 행복까지 모조리 빼앗아 가도록 방치할 필요는 없었다. 월급이 적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까지 초라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지하철이 목적지 역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서준도 그 묵묵한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실었다. 회사에 도착해 책상에 앉아 키보드 위에 조용히 손을 올렸다. 거창한 부와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내일의 나에게 오늘 하루를 죄책감으로 남겨주지 않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다정한 온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서준은 여전히 통장 잔고만큼이나 쓸쓸하고 가난한 청춘이었다. 하지만 미래가 짙은 안개 속에 싸여 있어도 이제 그는 알고 있었다. 가난이라는 것이 가진 돈이 적다는 뜻일 수는 있어도, 내가 가진 삶의 가치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차가운 세상을 버텨내는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귀하고 값비싼 선물은,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그 작고 다정한 온기라는 사실을. 고전학자이자 시인인 앤 카슨(Anne Carson)의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녀는 시와 소설, 에세이의 경계를 허물며 대담하고 독창적인 문학적 영토를 일궈왔습니다. 대표작 《빨강의 자서전》에서 보여주듯, 신화 속 괴물마저 현대인의 깊은 상처를 대변하는 인물로 재탄생시키는 그녀의 통찰은 실로 경이롭습니다. "고전 전통과 유쾌하게 대화하며 현대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 — 스웨덴 한림원 시대를 통찰해 온 거장에게 바치는 가장 빛나는 찬사입니다. 76세의 나이에 마침내 결실을 이루며 늦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희망을 안겨준 그녀에게 깊은 경의와 축하를 보냅니다. 책 한 권을 곁에 두시거나 짧은 리뷰 한 줄의 따뜻한 관심은 제가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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