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는 왜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는가? "중세 교회가 타락했다"고 우리는 배웠다. 성직자의 권위가 절대화되고, 종교의 이름으로 부와 권력이 축적되며, 신앙이 인간의 양심보다 제도와 권위에 종속되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종교 개혁은 교회의 본질을 되찾기 위한 저항이자 성찰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는 과연 중세 교회보다 얼마나 달라졌을까?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을 바라보면,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교회가 세상의 부패를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 안의 부패에는 얼마나 엄격한가? 목회자의 권위가 신앙의 본질을 앞서고, 교회가 거대한 조직과 재산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며, 신도들의 헌금과 충성이 권력의 기반으로 변질되는 일은 없는가? 물론 모든 교회와 목회자를 하나의 잣대로 판단할 수는 없다. 묵묵히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자신을 낮추며 신앙의 본질을 실천하는 교육과 성직자들도 있다. 그러나 선한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외면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신앙의 언어로 권력을 정당화하는 태도다. 목회자의 말에 질문하는 것을 불신앙으로 몰아가고, 교회 지도자의 잘못을 지적하면 공동체를 흔드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순간, 교회는 진리를 찾는 공동체가 아니라 침묵을 강요하는 조직으로 변할 수 있다. 신앙은 인간을 겸손하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종교적 권위가 비판을 차단하는 방패가 된다면 그 권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양식 있는 목사 등 종교 지도자를 비롯해서 조헌 TV '휴심정' 등에서 강조하는 마음 공부와 열린 성찰의 관점에서 보면, 종교 역시 자신의 신념이 굳어질 때 스스로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신념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타인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때, 종교는 본래의 목적에서 멀어질 수 있다. 이는 특정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종교 공동체가 경계해야 할 과제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의 곁에 섰고, 위선과 탐욕을 꾸짖었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고통보다 건물의 규모를 자랑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보다 정치적 영향력과 조직의 이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우리는 그 교회가 과연 누구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잃는 이유는 단순히 사회가 종교를 싫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교회 스스로 자신의 말과 행동 사이에 커다란 간극을 만들어 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랑을 설교하면서 내부에서는 갈등과 배제를 반복하고, 정직을 가르치면서 재정과 권력의 문제에는 투명하지 않다면, 사람들은 설교보다 교회의 행동을 통해 신앙의 진실성을 판단할 것이다. 종교 개혁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을 때마다 다시 시작되어야 하는 현재 진행형의 과제다. 한국 교회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은 종교계 내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제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더 높은 건물도, 더 큰 교세도, 더 강한 정치적 영향력도 아니다. 그것은 겸손과 정직, 약자를 향한 연민, 그리고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회계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 목회자가 권위보다 섬김을 선택하고, 신도들이 맹목적인 추종보다 양심과 성찰을 중시하며, 교회가 재산보다 사람의 존엄을 앞세운다면 신뢰는 조금씩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교회의 타락을 비판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의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정직하게 묻는 일이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려면 먼저 자신의 어둠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어둠을 인정하는 순간, 진정한 개혁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슈토론
중세 교회보다 더 타락한 것 같은 요즘 교회
10월 07일 | 조회수 44

송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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