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이 넘으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 아내, 그리고 유치원생 아이 둘과 함께 베트남 다낭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버지는 70이 넘도록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대만에 딱 한 번 가보셨습니다. 평생 고생만 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쓰였고, 그래서 이번에는 꼭 가족 모두가 함께 여행을 가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지병이 있으셔서 어쩌면 이번 여행이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무리한 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께는 조금 무리한 일정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협심증과 혈액암, 당뇨가 있으십니다. 협심증은 시술을 받으셨고 혈액암도 그럭저럭 유지되고 계셔서 저는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당뇨였습니다. 3박 4일 여행 중 첫째 날과 둘째 날, 너무나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아버지께 잘해드리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오랜만에 아버지가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문제는 여행 마지막 날 새벽에 발생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호텔의 한 숙소에 함께 묵고 있었고, 마지막 날 저는 식탁이 있는 거실 바닥에서 혼자 자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번 잠이 들면 잘 깨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습니다. 새벽 1시 30분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식탁에 앉아 졸고 계시는 것 같아 다가가 말을 걸었는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아버지의 몸을 만져보니 몸은 차가운데 얼굴에서는 계속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말을 걸어도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셨고, 팔이 자꾸 안쪽으로 굽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말씀도 굉장히 어눌하게 하셨고, 혀가 굳은 것처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셨습니다. 제 목소리에 가족들도 모두 일어났습니다. 저희는 바로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판단했고,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다낭에 있는 빈맥 국제병원으로 갔습니다. 아버지는 몸에 힘이 전혀 없어서 서 있기도 어려웠고, 혼자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해 상황을 설명하고 여러 검사를 받았는데, 아버지는 저혈당으로 쇼크가 온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그정도로 심각해지실줄 몰랐습니다. 혈당 수치는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낮았습니다. 아버지는 의식도 제대로 차리지 못했고, 응급실에서는 계속 수액을 교체하면서 포도당과 항생제 등을 투여했습니다. 원인은 장염으로 인한 저혈당 증상이었습니다. 저희는 새벽 2시경부터 오전 10시까지 응급실에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날 오후 1시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야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오전이 되면서 다행히 아버지의 상태가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부축을 받으면 걸어서 화장실도 다녀오실 수 있었고, 혈당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퇴원할 수 있었고 예정대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서는 아버지가 혼자 걸어 다니셨고, 담배도 피우시고, 저희와 함께 면세점도 구경하셨습니다. 가족 모두가 “정말 죽을 고비를 넘겼다”며 이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비행기를 타고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발생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밤새 응급실에 있으면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던 터라 비행기가 출발하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제 옆자리에 앉아 계셨고 같이 잠을 주무셨습니다. 저 역시 잠을 자고 있었는데, 평소 잘 깨지도 않는 제가 또다시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또 이상했습니다. 아버지를 불러도 저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으셨고 눈에 초점이 없었습니다. 팔도 이상해 보여 계속 주무르면서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혀가 꼬인 것처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시면서 “나, 나”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마 “놔”라는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 아버지를 불렀지만 눈에 초점이 없었고, 저를 바라보시는 것 같으면서도 자꾸 다른 곳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 순간 정말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승무원 한 분이 지나가다가 제가 계속 아버지를 부르는 모습을 보셨고 상황을 물어보셨습니다. 승무원분께서 마땅히 누울 자리는 없지만 비행기 앞쪽으로 가면 20~30분 정도라도 누울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와 동생이 다리에 힘이 풀려 거동을 하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부축해 비행기 앞쪽으로 옮겨 눕혔습니다. 그리고 승무원분께서 기내에 의사가 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 비행기 안에는 외국인 의사 두 분이 타고 계셨습니다. 두 분의 의사 선생님께서 바로 오셔서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식 상태를 체크하고, 저에게 평소 아버지의 정상적인 모습이 어떤지 물어보셨습니다. 여행 중 촬영한 아버지의 영상을 보여드리기도 했습니다. 혈압도 측정하고 산소마스크도 착용했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하지 못했는데, 옆에서 승무원분들이 계속 통역을 해주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오렌지주스 같은 것을 달라고 말씀하시자 승무원분들이 바로 비행기 뒤쪽으로 가서 챙겨오셨습니다. 약 30분 동안 두 분의 외국인 의사 선생님께서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해주셨습니다. 다행히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의사 선생님들이 계속 의식 상태를 확인해주시는 동안 아버지가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약 30분 정도 지나자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왔고 몸에도 다시 힘이 생겼습니다. 완전히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지만 큰 고비는 넘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께서는 앞으로도 가끔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하러 오겠다고 말씀하시고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승무원분들은 다른 승객분들께 양해를 구해 아버지가 다리를 뻗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셨고, 그 옆에 동생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주셨습니다. 동생이 아버지 옆에서 오렌지주스와 콜라를 드리며 아버지를 돌봤고 저는 가족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아내와 어머니는 울고 있었습니다. 가족 모두 그제야 조금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승무원분들은 저희 가족을 계속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한 승무원분께서 저에게 오셔서 현재 비행기가 대만 근처를 지나고 있는데, 만약 아버지의 상태가 위급해지면 대만에 긴급 착륙하는 방법도 있고 한국으로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또 한국 공항에 도착했을 때 구급차를 대기시켜 놓을지 여부도 계속 저와 상의해주셨습니다. 다행히 아버지의 상태가 크게 좋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나빠지지도 않았고, 결국 한국까지 계속 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쇼크 상태까지는 아닌 것 같아 구급차는 부르지 않았고, 다행히 무사히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아버지가 마신 음료들은 모두 계산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승무원분들은 받아야 할지 조금 머뭇거리셨지만, 저는 너무 감사하고 또 죄송한 마음이 들어 꼭 계산해달라고 말씀드리고 결제했습니다. 그리고 고생하신 외국인 의사분등에게도 드릴게 없어서 비행기에서 커피를 사드렸습니다. 도착 후에는 승무원분들이 휠체어까지 준비해주셔서 아버지가 빠르게 비행기에서 내리고 입국 대기 시간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공항 근처에서 바로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오렌지주스를 많이 사서 차에 싣고 이동했습니다. 동생이 지방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를 큰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그런데 지방 병원 응급실에서 다시 혈당을 측정했을 때 또다시 쇼크가 오기 직전 수준의 혈당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입원 중이시지만 많이 좋아지셨고, 예전만큼의 컨디션도 많이 회복하셨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아버지가 세 번의 큰 고비를 넘기신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저에게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비행기 안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생각하며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해외여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효도여행이 정말로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이 될 뻔했습니다. 그래서 제주항공 승무원분들께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2026년 9월 7일 오후 1시 10분 다낭에서 인천으로 출발한 비행기의 네 분의 승무원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자 승무원분은 아버지가 누워 계실 때 옆에서 의사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메모해주시고 통역까지 해주셨습니다. 여자 승무원님께서는 저희 자리에 쪽지를 남겨주시고 계속 걱정해주셨습니다. 비행기 앞뒤를 계속 오가면서 오렌지주스 등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셨습니다. 제일 연륜이 있으신 승무원님께서는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의사 선생님들을 찾아주시고, 옆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필요한 청진기와 혈압계, 산소마스크 등을 챙겨주셨습니다. 또 다른 승무원님께서는 아버지에게 쇼크 증상이 왔을 때 저희 쪽으로 오셔서 아버지 신발까지 벗겨주시고 발을 주물러드리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천에 도착하기 전 저에게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여기서부터는 더 도와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씀까지 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이용해달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너무 감사한 분들입니다. 승무원분들의 빠른 대처와 친절함 덕분에 저희 아버지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 그 비행기에 운이 좋게도 다른 국적의 의사 선생님 두 분이 타고 계셨던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를 돌봐주신 외국인 의사 선생님 두 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빠른 대처를 해준 제주항공 승무원분들이 너무 감사하네요.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이번 여행은 결국 진정한 효도여행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국내든 해외든 건강이 괜찮으시고 기회가 된다면 가까운 곳이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하고 싶습니다. 해외여행을 거의 해보지 못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와 아들들만 함께하는 여행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충분히 회복하신다면, 그때는 건강 상태를 잘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아직 아버지께 못다 한 효도가 너무 많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된 여행이었네요.
자유주제
인생에 한번도 일어나지 않을 일을 겪은 스토리
09월 11일 | 조회수 36
클
클리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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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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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분 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내려갔습니다.
정말 큰일을 겪으셨네요 이렇게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철렁한데 얼마나 놀라고 힘든 순간이셨을지..ㅠ 무사히 한국에 도착하셔서 다행이고 타이밍 늦지 않게 많은 도움의 손길들이 있었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아버님 치료 잘 받으시고 얼른 쾌차하시길 빕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내려갔습니다.
정말 큰일을 겪으셨네요 이렇게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철렁한데 얼마나 놀라고 힘든 순간이셨을지..ㅠ 무사히 한국에 도착하셔서 다행이고 타이밍 늦지 않게 많은 도움의 손길들이 있었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아버님 치료 잘 받으시고 얼른 쾌차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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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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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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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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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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