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제

관점의 변화

09월 08일 | 조회수 36
포도랜드

약 1년 6개월의 개발 경력 공백을 깨고, 감사하게도 개발 직군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서류 전형은 현재의 회사 상황과 오늘의 인사 담당자 컨디션과 현재까지 학습된 AI 반응에 따라 갈린다는 생각이 들어 이력서를 다듬고 여기저기 막 제출해 두었는데, 마침 한 군데서 연락이 왔고 이후 면접을 거쳐 결국 합격했습니다. 비록 개발사는 아니지만, SaaS 형 ERP 솔루션을 구축하여 이미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온프레미스 방식의 솔루션을 대체하길 원하는 상황입니다. 기획자가 없습니다. 디자이너도 없고요. 백엔드 개발자도 없습니다. PM조차 없습니다. 대표님마저 글로벌한 분이라 뵐 수가 없습니다. 아무 온보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저는 프론트 개발자입니다. 그저 이전의 개발자가 만들어 놓고 간 결과물과 문서들만이 저를 반겨줄 뿐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즐겁습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기 보다 '무엇을 해야할까' 의 질문이 계속 액션을 만들어줍니다. 일단 '시스템 먼저 파악해보자' 라는 생각이 지나가니 '시스템을 파악한다는 건 무엇이고, 어디까지 파악해야하는지, 파악을 위해 실질적으로 뭘 해야하는지 등' 의 생각들이 연이었습니다. 전체 흐름이 중요하니 'Client - Server - DB - Infra' 과정을 살펴보며 가독성 있게 Notion에 정리하게 되었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걸 뭐라 정의하지?' 라고 했을 때 마이크로서비스/시스템/인프라 아키텍처 다이어그램과 같은 명칭들을 알게 됐습니다. 어느 덧 시스템 윤곽이 보였을 때, 여전히 뭔가 그림이 안그려지는 기분이 들었고, 이번엔 DB 테이블 구조를 뜯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러고나니, '이 테이블은 무슨 기준으로 만든건지, 각 컬럼들은 대체 뭘 근거로 만들지?' 라는 생각에 타겟은 비즈니스 도메인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의 첫 단계인 비즈니스 도메인 이해와 고객 요구사항 지점까지 오게 된 겁니다. 이제 입사 2주차이지만, 어쩌면 저는 원했던 것 같습니다. 짚신 한 가닥을 아주 잘 꼬는 사람이 되기보다, 신발의 특징을 이해하고, 짚신을 설계해보며,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테스트 하여 사람들이 신을 수 있는 짚신을 시장에 내놓아 그들의 반응을 보며 피드백하는... 전체 프로세스를 직접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요. 그래서 현재는 고객사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업무 프로세스는 무엇인지, 정책 정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시스템으로 이렇게 풀어내면 어떨지 등을 얼른 나누고 싶습니다. 사실 연봉은 1년 6개월 전보다 적어졌습니다. 회사 차원에선 개발사가 아닌지라 미니멈 연봉으로 PM 및 QA겸 1인 리드 개발이 되는 사람을 뽑길 원했고, 개인 차원에선 개발 경력 공백이 있어 입사만으로 감사한 상황이었기에 연봉이 다운 되었어도 필드에 진입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다만, 1년 6개월 전과의 차이는 연봉 뿐 아니라 관점인 것 같습니다. 최근 1년은 전직하며 다른 일을 경험하였고, 6개월은 사업을 구상하고 직접 추진해보니 비즈니스를 대하는 태도가 "개발자"가 아닌 "Product Owner" 가 된 것이죠. 그래서 이제는 저의 역할 범위를 보지 않고 제품을 봅니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가 체계 없는 조직일지라도 오히려 저를 생각하게 만들고 날카롭게 연단 해주는 것 같아서 즐겁습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학습이 더뎌져도 여전히 더 배우고 싶고, 알고 싶고, 더 경험해보고 싶은 것은 존재 가치를 높이는 일 같습니다. 관점의 변화는 신비롭습니다. 어제까지 밀쳐내던 것을 오늘은 잠식해도 좋으니 내게로 다가오라고 말하게 되니... 40대가 되면 또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겠죠. 그 신비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내일을 위한 취침 전략을 취하러 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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