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내 앞에는 늘 하나의 선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선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 줄 알았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 말을 잘 듣는 것. 어른들에게 예쁨 받는 아이가 되는 것. 그 선만 넘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면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나를 보며 웃을 것 같았다. 다른 집 아이의 이름 대신 내 이름을 말할 것 같았다. “누구는 이번에 몇 점을 받았다더라.” “누구는 참 착하다더라.” “누구는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더라.” 나는 늘 누군가의 옆에 세워졌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 하나가 그어졌다. 나는 그 선을 넘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공부했다. 친구들이 주말에 만나 놀 때 나는 학원에 갔다. 피아노 레슨을 받고, 숙제를 하고, 다음 시험을 준비했다. 친구들이 웃으며 놀러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지금 놀지 않으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한 시간 더 공부하면, 문제 하나를 더 풀면, 피아노 곡 하나를 더 완벽하게 연주하면, 내 앞에 그어진 선에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어린 나에게 시간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투자하는 것이었다. 오늘을 조금 포기하면 내일의 나는 조금 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았다. 공부했고, 경쟁했고, 버텼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잘하는 것이 기쁜 일이 아니라 잘하지 못하는 것이 무서운 일이 되었다. 성적이 떨어졌던 시절에는 내가 무언가를 크게 잘못한 사람처럼 죄책감을 느꼈다. 점수가 떨어진 것뿐인데, 내가 함께 작아진 것 같았다. 다시 올라가야 했다. 다시 증명해야 했다. 다시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더 열심히 했다. 좋은 성적을 받았고, 장학금을 받았다. 남들이 어렵다고 말하는 기회들을 붙잡으려고 노력했고, 낯선 곳에서 혼자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대단하다”고 해줄 만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속에서 버텼고, 내 힘으로 내 삶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제 선을 넘었다고. 이 정도면 되었겠지. 이 정도면 이제 나를 보면서 다른 사람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 실제로 몇 달 동안은 그랬다. 가족은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었다. 나는 그 짧은 시간을 오래 기억한다. 그들의 얼굴에서 안도와 자부심을 보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내 이름 자체로 충분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선이 조금 더 앞으로 가 있었다. “그래서 승진은 언제 하니?” “돈은 얼마나 모았니?”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니?” “계속 거기서 살 거니?” “언제 더 좋은 자리에 갈 거니?” 나는 내가 서 있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착점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어느새 출발점이 되어 있었다. 어제까지 자랑이었던 것이 오늘은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잘해낸 일은 금세 과거가 되었고, 아직 하지 못한 것들만 내 앞에 남았다. 그래서 또 달렸다. 이번에는 더 많이 일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하러 갔고, 밤이 깊어야 집에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주말에도 일을 했다. 돈을 벌었다. 돈을 모았다. 어렸을 때는 성적을 모았고, 이제는 숫자를 모았다. 통장에 찍힌 숫자가 커질수록 이번에는 정말 그 선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쓸 수 있는 시간보다 버는 돈이 많아졌다. 만날 사람보다 업무 연락이 많아졌다. 저녁은 사라졌고, 주말은 짧아졌고, 취미는 뒤로 밀렸다. 친구와 약속을 잡으려면 달력을 먼저 확인해야 했다. 좋아했던 것들은 하나둘씩 ‘나중에’라는 말 뒤로 밀렸다.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나중에 일이 조금 줄면.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나중에.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해야 할 일. 언젠가 삶이 조금 안정되면 생각해볼 일. 나는 어릴 때와 똑같이 살고 있었다. 친구들과 놀러 가는 대신 학원을 선택했던 아이가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대신 일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생각했다. 지금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지금 조금만 더 하면 선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달라진 것은 교과서가 업무가 되었고, 성적표가 통장이 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또 생각했다. 이번에는 정말 선을 넘었다고. 이 정도까지 왔는데, 설마 또 다른 것이 필요할까. 가족은 다시 잠시 기뻐했다. 그리고 나는 그 기쁨을 오래 붙잡아두고 싶어서 더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선은 또 다른 곳에 있었다. 이번에는 결혼이었다. 아이였다. 가정이었다. “누구는 벌써 결혼했대.” “누구는 아이가 있대.” “너 친구들은 다 가정을 꾸렸는데.” “누구는 살림도 참 잘한다더라.” “누구는 요리도 그렇게 잘한대.” 이상했다. 나는 분명 그들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들을 따라왔다. 공부를 잘하라고 해서 공부했고, 좋은 학교에 가라고 해서 노력했고, 좋은 직장을 가지라고 해서 일했고, 독립해야 한다고 해서 혼자 서는 법을 배웠고, 성공하라고 해서 성공하려 했고, 돈을 벌라고 해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 길을 걷느라 갖지 못했던 것들을 왜 갖지 못했느냐고 묻는다. 나는 가끔 묻고 싶다. 그럼 나는 언제 그 모든 것을 했어야 했을까. 밤늦게 집에 돌아온 뒤에 요리를 배웠어야 했을까. 주말에도 일하는 사이사이에 좋은 사람을 찾아 사랑에 빠졌어야 했을까. 내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면서 동시에 누군가와 가정을 꾸리는 법까지 배웠어야 했을까. 누군가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요리도 하고, 살림도 하면서 산다고. 나는 왜 그것들을 하지 못하느냐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다시 선을 보았다. 어릴 때는 시험지 위에 있던 선. 조금 자란 뒤에는 학교와 직장과 돈 앞에 있던 선. 그리고 이제는 결혼과 가정 앞에 놓인 선. 모양만 달라졌을 뿐 늘 같은 선이었다. 여기까지 오면 된다고 했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다가갈 때마다 그다음의 ‘여기까지’가 생겼다. 결혼을 하면 그다음에는 아이를 물을 것이다. 아이를 가지면 어떻게 키우는지를 물을 것이다. 집을 마련하면 어디에 마련했는지를 물을 것이고, 하나를 이루면 그다음 하나가 기다릴 것이다. 가끔은 정말 웃음이 난다. 도대체 선이 몇 개인가. 공부의 선. 직업의 선. 승진의 선. 연봉의 선. 저축의 선. 효도의 선. 사랑의 선. 결혼의 선. 가정의 선. 나는 평생 선을 넘으며 살아왔는데, 왜 한 번도 선 너머에 서본 적이 없는 걸까.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선에 가까워질 때마다 누군가가 그것을 조금 더 멀리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는데 도착하지 못했다. 나는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는데 충분하지 못했다. 그 선은 항상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다섯 걸음 가면 여섯 걸음 멀어졌고, 열 걸음을 가면 열한 걸음 앞에 있었다. 내가 뛰면 선도 함께 움직였다. 그런데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목표라고 믿었다. 성공이라고 믿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다. 자랑스러움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인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계속 달렸다. 한 번만 더. 이번 것만 해내면. 이번에는 정말. 이번에는 틀림없이. 그런데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움직이는 선은 넘을 수 없는 선이다. 내가 느려서가 아니다. 내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애초에 도착하라고 만들어진 선이 아니었다. 어쩌면 계속 달리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선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나보다 많이 버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가도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내가 결혼해도 누군가는 더 좋은 사람과 결혼했다고 할 것이고, 아이를 낳아도 누군가는 더 빨리 낳았다고 할 것이다. 아이 하나를 낳으면 둘째는 언제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집을 사면 더 큰 집이 나타나고, 차를 사면 더 좋은 차가 나타나고, 한 가지를 이루면 비교할 새로운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비교에는 끝이 없다. 그리고 비교에는 도착도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계속 이 선을 따라가고 있는가. 누가 이 선을 그었는가. 누가 저만큼 가야 잘 산 것이라고 정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이 선의 끝에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있는가. 나는 가끔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한다. 주말 아침, 친구들이 놀러 나갈 때 가방을 들고 학원으로 향하던 아이. 피아노 앞에 앉아 같은 부분을 몇 번이고 반복하던 아이.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며 문을 열기 전부터 누군가의 표정을 상상하던 아이. 칭찬받고 싶어서 작은 실패 하나에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던 아이. 그 아이에게 지금의 나를 보여주면 아마 놀랄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어른이 어느 정도는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혼자 낯선 곳에서도 살아봤고, 좋은 학교를 졸업했고, 장학금도 받았고, 남들이 인정해주는 곳에서 일했고, 오랜 시간 자신의 일을 해왔고, 스스로 돈을 벌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있다. 그 아이가 꿈꾸던 것들 중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있다. 그 아이는 아마 내게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 정말 많이 왔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그 아이처럼 고개를 들어 누군가의 표정을 살핀다. 이번에는 괜찮은지. 이번에는 자랑스러운지. 이번에는 내가 충분한지. 그리고 그 순간 깨닫는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어쩌면 그 선 앞에 서 있는 같은 아이였다는 것을. 단지 손에 들고 있는 것만 달라졌다. 그때는 성적표를 들고 있었고, 조금 더 자라서는 졸업장과 이력서를 들고 있었고, 이제는 연봉과 통장 잔고와 삶의 모양을 들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한다. “이 정도면 됐나요?” “이제는 자랑스러운가요?” “이제는 내가 충분한가요?” 생각하면 조금 슬프다. 나는 평생 다음 선을 바라보느라 내가 이미 넘어온 선들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시험을 잘 보면 다음 시험을 생각했고, 학교를 졸업하면 직장을 생각했고, 직장을 얻으면 승진을 생각했고, 돈을 벌면 얼마나 모았는지를 생각했고, 무언가를 이루면 그 순간 기뻐하기보다 그다음 부족한 것을 찾았다. 나는 늘 미래의 나를 위해 살았다. 조금 더 나은 나. 조금 더 성공한 나. 조금 더 사랑받는 나. 조금 더 자랑스러운 나. 그러느라 지금의 나는 늘 임시적인 사람이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 조금 더 고쳐져야 하는 사람.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사람. 하지만 이제는 어린 나에게 다른 말을 해주고 싶다. 친구들이 놀러 간다고 해서 너도 꼭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피아노를 한 곡 덜 잘 쳐도 괜찮다고. 시험에서 몇 점을 덜 받아도 네가 덜 사랑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다른 아이보다 뒤에 있다고 해서 네가 뒤처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그 선은 네 것이 아니라고. 계속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선을 넘지 않아도 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그 말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조금 더 일찍 믿을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나는 평생 선을 넘으려고 달렸다. 친구들이 놀 때 공부했고, 쉬고 싶을 때 일했고, 오늘을 포기하면 내일의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다.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추지는 않았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았다. 뒤처지면 실망시킬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실망시키면 나는 다시 사랑받기 어려운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또 달렸다. 조금만 더. 저기까지만. 이번 것까지만. 승진하면. 조금 더 벌면. 조금 더 모으면. 결혼하면. 아이를 가지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완벽해지면.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달려야 하는 걸까. 선은 여전히 내 앞에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내가 한 걸음 다가가면 그 선도 한 걸음 멀어질 것이다. 내가 뛰면 그 선도 뛸 것이다. 내가 평생을 달려도 아마 마지막까지 내 앞에 있을 것이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선을 넘는 상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달리지 않는 나를 상상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 누구보다 앞서지 않아도 되는 나. 다음 목표가 없는 나. 아무도 내게 “그래서 다음은?” 이라고 묻지 않는 곳. 이상하게도 그곳은 아주 조용했다. 나는 오래도록 그 조용함을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친구들과 놀지 못했던 주말. 학원으로 향했던 아침. 피아노 앞에서 보냈던 오후. 시험 때문에 울었던 밤. 혼자 견뎌야 했던 날들. 일 때문에 놓쳐버린 저녁들. 수없이 참았던 말들. 수없이 삼켰던 서운함들. 그 모든 날들이 내 뒤로 아주 멀리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는 정말 많이 왔다는 것을. 아주 많이. 그런데 이상했다. 평생 듣고 싶었던 그 말을 왜 나는 이제야 내 입으로 하고 있는 걸까. 잘했다. 많이 했다. 이제 됐다. 조금 쉬어도 된다.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군가에게서 그 말을 기다렸다. 시험을 잘 보면 들을 줄 알았다. 좋은 학교에 가면 들을 줄 알았다. 좋은 직장을 가지면 들을 줄 알았다. 돈을 벌면 들을 줄 알았다. 충분히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면 언젠가는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해줄 줄 알았다. “이제 됐다.”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이제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된다.” 하지만 그 말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내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이제 됐다고. 정말 많이 했다고. 아무것도 더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그 선을 따라가지 않았다. 선은 아마 계속 움직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향해,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또 다른 비교를 향해.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앞으로 갔을 것이다. 누군가는 승진했고, 누군가는 더 많은 돈을 벌었고, 누군가는 집을 샀고, 누군가는 결혼했고, 누군가는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또 말했을 것이다. “누구는 벌써 저만큼 했는데.” 다만 그 문장 속에 더 이상 내가 없었을 뿐이다. 그제야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다. 다음은 언제냐고. 얼마나 더 할 거냐고. 왜 아직 그것을 가지지 못했느냐고. 조금 더 할 수 있지 않았느냐고. 모든 질문이 멈췄다. 내가 평생 바라던 조용함이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찾아온 조용함이었다. 내가 남겨놓은 자리에는 평생 모아온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잘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모았던 것들. 성적표. 졸업장. 이력서. 통장에 찍힌 숫자.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수많은 작은 증거들. 그런데 주인이 사라지고 나니 그것들은 이상할 만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제야 누군가는 내가 참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제야 누군가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제야 누군가는 조금만 덜 몰아붙일 걸, 조금 더 자주 잘했다고 말해줄 걸, 한 번쯤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지 말고 그냥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줄 걸,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평생 듣고 싶었던 말들은 어쩌면 내가 들을 수 없게 된 뒤에야 도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슬픈 일이었다. 나는 평생 선을 넘지 못해서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몰랐다. 처음부터 그 선을 넘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충분히 멀리 와 있었다는 것을. 친구들과 놀러 가지 못했던 그 아이도, 성적표를 들고 문 앞에서 망설이던 그 아이도, 칭찬 한마디에 안도하던 그 아이도, 사실은 처음부터 무언가를 더 해내야만 사랑받을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조금만 일찍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너는 충분하다고.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충분했다고. 다른 사람보다 잘하지 않아도 자랑스러울 수 있다고. 쉬어도 된다고. 실패해도 된다고.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고. 아니,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다고. 나도 조금만 일찍 그 말을 나에게 해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평생 나보다 한 걸음 앞에서 움직이던 선은 끝내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그 선은 계속 앞으로 갔다. 그날 멈춘 것은 선이 아니라 나였다.
자유주제
움직이는 선
08월 10일 | 조회수 176
멈
멈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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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열심히 살아오신 님을 응원합니다.
글에도 쓰셨듯이 이제는 그 여러 선들을 마음대로 옮겨놓으실 정도의 위치에 있으신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그어놓은 선은 과감히 치워버리시고 이제부터라도 마음내키는 대로 여기저기에 선을 그리시면서 살아가셔도 될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참 수고많았다 쓰담쓰담해주시고 이제는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으면서 본인이 주인공인 삶을 살아가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옆에 계시다면 열심히 살아오신 것에 대해 엄지척 날려드리고 싶습니다.
열심히 살아오신 님을 응원합니다.
글에도 쓰셨듯이 이제는 그 여러 선들을 마음대로 옮겨놓으실 정도의 위치에 있으신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그어놓은 선은 과감히 치워버리시고 이제부터라도 마음내키는 대로 여기저기에 선을 그리시면서 살아가셔도 될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참 수고많았다 쓰담쓰담해주시고 이제는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으면서 본인이 주인공인 삶을 살아가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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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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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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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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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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