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투 죄송합니다.) 몇년전에 거진 20년 다닌 회사에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전에도 '그만둘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한적이 있지만 이력서를 쓰고 링크드인 계정을 파고 잡사이트 계정을 다시 살리고 하면서까지 이직 준비를 한건 그때부터였다. 새해 다짐으로 그렇게 이력서를 올렸다. 거진 20년만에 쓰는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는 새로왔다. 나때는 취업용으로는 토익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텝스, 오픽, 토스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경력기술서는 처음 써봤다. 신입때야 경력이라는게 없었으니까. 그렇게 몇번 업데이트를 하고 채용공고를 보는데, 근속연수 곧 20년을 바라보는 40대 중반이 써볼만한 공고는 없었다. 거기다가 외벌이니까 급여가 다운되면 안되고, 고향에서 멀어지고는 싶지 않고.. 이것저것 따졌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헤헌에게 연락이 왔다. 외국계 회사의 차장급 자리였다. 사업장 위치도 괜찮았고, 직급 다운이었지만 급여만 맞춰준다면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링크드인에서 그 회사를 찾아서 팔로우를 하고 기사와 홈페이지를 찾아서 면접 연습을 했다. 그렇다, 그때는 헤헌이 서류 받아가면 최소 면접은 보는 줄 알았다. 열흘쯤후에 헤헌에게 전화가 왔다. '죄송합니다, 채용사에서 15년차 이상은 좀 곤란하다고 합니다. 부장님이 Over-qualified 시라고 합니다.' 나이가 많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달쯤 있다가 링크드인에 그 회사의 채용공고가 올라온 것을 보았다. 지난번 헤헌이 제안했던 자리보다 나와 더 잘맞는 자리 같아서 지원했다. 6월 중순이 마감이었다. 하지만 한달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탈락인가보네' 하고 잊어버렸다. 8월말 퇴근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받으려다가 받았는데 그 회사 채용담당자란다. 3일전에 메일을 보냈는데 확인을 안하는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개인 메일은 스팸이 대부분이라 잘 확인을 안하는데, 스팸 무더기들 사이에 서류합격 메일이 와있었다. '서류심사가 오래 걸리셨네요' 라고 했더니, '유럽이 여름휴가가 길어서요' 라고 하더라. 이 자리는 한국 법인 소속이 아니라 유럽 본사 직속 포지션이고 한국에 근무하는거라 먼저 자기와 Pre-인터뷰를 하고 그후에 유럽 HR 메니저와 1차 인터뷰, 그리고 유럽 디렉터와 최종 인터뷰를 한다고 안내를 받았다. 화상으로 진행된 프리-인터뷰는 주로 내 경력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내용이었고 절반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자신은 한국법인 소속으로 본사에 협조하는 입장이라며 이 인터뷰 녹화본이 본사로 보내진다고 했다. 2주쯤후 본사 HR 담당과 면접을 했다. 시차 때문에 오후 반차를 내고 집에서 화상으로 약 20분정도 인터뷰를 했다. 딱히 곤란한 질문이나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없었다. 이런걸로 나를 평가할 수 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매우 친절했다. 3주쯤후에 최종 면접으로 디렉터와 면접을 했다. 디렉터는 나에 비하면 어린 여자분이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박사를 하고 유럽 유명기업에서 8년을 근무후에 이 회사에 디렉터로 옮겨왔고 세계 각 사업장에 자신의 조직을 세우는 중이었다. 이분도 유럽인 답게 압박질문이나 곤란한 질문은 없었고, 내 경력기술서를 칭찬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질문들을 했다. 한국어로 대답하기에도 순발력이 딸렸는데 영어로 하니 더 버벅였던것 같다. 외국게 본사 소속으로 다니기에는 내 영어가 아직 부족하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2주쯤후에 채용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원래 다음 일정은 건강검진인데, 한국에서 근무하실 분이니 한국 대표님이 차한잔 하시자고 합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와주세요.라고 하더라. 일정 조율을 하고 아내에게 합격한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그 회사에서 출퇴근이 가능하면서 아이가 전학가기 좋은 아파트들을 알아보고 주말에는 그 동네로 가서 실제 입지를 확인했다. 출근해서는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최종오퍼를 받지 못했기에 퇴사통보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표를 만나러 갔다. 채용담당자는 인사담당이사와 함께 나를 맞아주었다. 그때까지도 몰랐는데, 이 회사는 Manager 가 이사라고 한다. 나는 그냥 관리자, 팀장 이런 정도의 포지션인줄 알았는데 본사 디렉터 직속으로 한국에서 이사로 일하게 될거라고 하면서 건강검진일자와 출퇴근 방법 등에 대한 스몰토크를 했다. 대표는 접견실에 다른 매니저와 함께 노트북을 들고 들어왔다. 티타임이라고 하더니 차한잔 주지 않았다. 대표는 한시간반동안 나를 매섭게 몰아 붙였다. 채용과정을 다 통과하고 건강검진과 오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허를 찔렸다. 나의 인터뷰 기록, 인성검사 결과 등을 가지고 나를 공격했다. 그래도 나는 채용된줄 알았다. 건강검진 및 오퍼를 기다렸다. 그런데 열흘쯤 지나서 갑자기 채용이 Freezing 되었다고 본사 HR 에서 메일이 왔다. 당황스러웠다. 채용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더니 본사에서 진행하는 일이라 자기도 몰랐다고 한다. 다음날 다시 연락을 주었는데 떨어진 것은 아니고 그냥 그 포지션의 채용이 보류된 것이라고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1년 넘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내가 처량해서. 그 회사의 채용사이트에 '진행중'으로 표시 되어 있던 내 지원을 캔슬시켰다. 이사를 준비하고 아이 학교를 찾아보고 미리 가서 보고... 다 김치국을 사발로 마신 셈이었다. 올초에 예전에 나에게 그 회사 차장급 자리를 오퍼했던 헤헌이 다시 그 회사 포지션을 제안하는 연락을 했다. 나는 그 회사 매니저 자리에 지원했다가 한국 법인장님 면접을 보고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했다. 헤헌은 '아.. 그자리 아직도 안 뽑혔어요. 한국 법인장 입장에서 본사 소속 이사가 있으면 껄끄러우니까 안 뽑은 모양이더라고요' 라고 하더라. 아놔... 그럼 결국 한국법인장의 꼬장 때문에 안될 자리에 열과 성을 들인거네? '아직도 그분이 법인장이시죠? 그럼 저를 맘에 안들어하지 않으실까요? 면접 봐도 안될것 같네요.' 라고 거절했다. 이직을 결심하고 두번째 지원에서 바로 최종합격까지 간줄 알았다가 미끄러졌을때는 멘탈이많이 흔들렸지만 내가 경쟁력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 뒤로도 헤헌에게 연락이 오거나 내가 지원을 하거나 했는데, 큰회사는 서류탈락이 대부분이고 중견급은 면접을 가도 내 리더 경력이 짧다고 공격해왔다. 두번째 회사는 나에게 나도 먹힐수도 있구나 하는 자신감과 함께 최종합격 트라우마를 주었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회사에 퇴직통보를 하면 안된다는게 국룰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나이와 연차가 높다보니 일반적인 채용공고는 거의 지원할 자격이 넘쳐서 안되고, 헤헌에게 연락이 오면 이력서를 보내는데.. 이제는 헤헌이 단순히 이력서 전달하고 말 사람인지 진지하게 내 경력을 보고 연락을 한것인지 구분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이번주에 평소부터 꿈꿔왔던 회사에 최종면접을 보러 간다. 우리 업계에서 1,2위를 다투는 회사이고 직급을 낮춰가도 지금보다 연봉이 오르는 곳이다. 아내와 나는 또 이사갈 집을 호갱노노 사이트에서 찾아보면서 김치국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뭐 지금 회사에 퇴사통보만 안하면 아내와 둘이 김치국 쯤 마셔도 되겠지.
이직/커리어
최종합격 트라우마 썰.
08월 03일 | 조회수 104
노
노예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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