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토론

괴물이 괴물을 계속 생산하는 나라

07월 10일 | 조회수 164
공명

한국의 시스템은 처음부터 괴물이 아니었다. 하나의 사고를 막기 위해 규정 하나를 만들었고, 하나의 부정을 막기 위해 서류 하나를 추가했으며, 하나의 해킹을 막기 위해 인증서 하나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제도가 생겨도 기존 제도는 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인증이 생겨도 옛 인증은 그대로 남았다. 간편인증이 등장했지만 공동인증서는 여전히 필요했고, 원패스가 생겼지만 카카오, 네이버, 은행 인증이 또 붙었다. 통합한다며 하나를 더 만들고, 간소화한다며 절차를 하나 더 추가한다. 그래서 한국의 시스템은 개선될수록 복잡해진다. 오늘도 나는 정부 지원사업 하나를 신청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업계획서를 쓰는 데 시간을 쓴 것이 아니다. 기술을 설명하고 시장을 분석하는 데 시간을 쓴 것도 아니다. 로그인하고, 인증하고,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휴대전화로 확인하고, 다시 PC로 돌아오고, 대표자 개인인증을 하고, 법인인증을 하고, 사업자번호를 입력하고, 또 인증서를 선택했다. 몇 시간을 헤맨 끝에 마지막 화면이 나왔다. “사업자번호와 인증서 정보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틀렸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사용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 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한다. 시스템은 오류를 냈지만, 책임은 사용자에게 돌아온다. 이것이 한국식 보안이다. 기관은 안전하다. 은행도 안전하다. 시스템을 만든 업체도 안전하다. 왜냐하면 모든 불편과 모든 실패와 모든 책임을 사용자에게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인증서를 잘못 선택했을 수 있고, 보안 프로그램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을 수 있고, 브라우저 설정을 틀렸을 수 있고, 사업자 정보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시스템은 언제나 옳고, 사용자는 언제나 의심받는다. 이 나라의 시스템은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 기관이 책임지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 담당자는 규정을 따른다. 개발자는 요구사항대로 만든다. 기관은 지침을 지켰다고 말한다. 감사에서는 서류가 있는지만 확인한다. 아무도 전체를 보지 않는다. 누구도 이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묻지 않는다. 누구도 국민이 몇 시간을 허비하는지 계산하지 않는다. 누구도 기업이 인증 하나 때문에 사업을 포기하는지 관심 갖지 않는다. 각자는 자기 책임을 피하기 위해 벽돌 하나를 쌓는다. 그렇게 쌓인 벽이 어느 날 괴물이 된다. 그리고 그 괴물은 다시 새로운 괴물을 생산한다.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하나 더 만든다. 사고가 나면 책임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확인 절차를 하나 더 만든다. 민원이 들어오면 사용성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문을 하나 더 붙인다. 그 결과 우리는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통과해야 한다. 시민은 사용자가 아니라 수험생이 된다. 기업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증 절차를 푸는 사람이 된다. 직원은 생산적인 일을 하는 대신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오류 메시지를 검색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 괴물 앞에서 시간을 잃는다. 그 시간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그 비용은 예산서에 나오지 않는다. 그 스트레스는 정책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누군가는 사업을 늦추고, 누군가는 신청을 포기하고, 누군가는 직원을 반나절 동안 인증 문제에 붙잡아 둔다. 이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조금씩 갉아먹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다. 한국은 디지털 강국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디지털 강국은 시스템이 많은 나라가 아니다. 사용자가 시스템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다. 좋은 시스템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조용히 작동하고, 사용자를 이해하며, 오류가 나면 이유를 알려주고, 책임을 사용자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시스템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사람이 시스템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사람을 심사하고 의심하고 훈련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도 괴물로 변한다. 담당자는 규정만 말하는 사람이 되고, 개발자는 사용자보다 발주기관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며, 시민은 분노와 체념을 반복하는 사람이 된다. 괴물 시스템이 괴물 같은 태도를 만들고, 그 태도가 다시 더 복잡한 시스템을 만든다. 괴물이 괴물을 계속 생산하는 나라. 어쩌면 우리가 없애야 할 것은 인증서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무언가를 추가해야 안심하는 습관, 책임을 지기보다 절차를 만드는 문화, 사람보다 규정을 믿는 사고방식. 그것부터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외칠 것이다. 통합하자. 간소화하자. 혁신하자.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이름의 괴물 하나가 또 태어날 것이다.

댓글 2
공감순
최신순
    게타덕
    5일 전
    공공기관이나 행정쪽이나 결국 완장만 차면 자기 책임 피하려고 그 뒤로 다 숨는건 다 똑같네요. 제조 공급망도 보통은 넘어서, 진짜 열불이 터지네요. 저는 대놓고 이 시스템들 문제라고 글쓰고 있습니다. 유명한 스피커가 되어서 이런 시스템을 손보게 만들고 싶네요.
    공공기관이나 행정쪽이나 결국 완장만 차면 자기 책임 피하려고 그 뒤로 다 숨는건 다 똑같네요. 제조 공급망도 보통은 넘어서, 진짜 열불이 터지네요. 저는 대놓고 이 시스템들 문제라고 글쓰고 있습니다. 유명한 스피커가 되어서 이런 시스템을 손보게 만들고 싶네요.
    답글 쓰기
    0
    지금 바로 리멤버 회원이 되어
    모든 댓글을 확인하세요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회사에서 풀지 못한 고민, 여기서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가 풀지 못한 실무적인 어려움, 사업적인 도움이 필요한 적이 있으셨나요? <리멤버 커뮤니티>는 회원님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입니다. 회원 가입 하고 보다 쉽게 같은 일 하는 사람들과 소통하세요
    회사에서 풀지 못한 고민, 여기서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가 풀지 못한 실무적인 어려움, 사업적인 도움이 필요한 적이 있으셨나요? <리멤버 커뮤니티>는 회원님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입니다. 회원 가입 하고 보다 쉽게 같은 일 하는 사람들과 소통하세요
    답글 쓰기
    0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답글 쓰기
    0
추천글
대표전화 : 02-556-4202
06235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134, 5,6,9층
(역삼동, 포스코타워 역삼) (대표자:최재호, 송기홍)
사업자등록번호 : 211-88-81111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2016-서울강남-03104호
| 직업정보제공사업 신고번호: 서울강남 제2019-11호
| 유료직업소개사업 신고번호: 2020-3220237-14-5-00003
| 국외 유료직업소개사업 신고번호: F1200020240004
Copyright Remember & Compan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