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이 조광조 일파를 일망타진한 기묘사화! 그 중심에는 남곤이 있었다. 그도 엄밀히 따지면 사림이였으나 조광조의 사림파의 급진개혁에 염 증을 느껴 훈구대신들 편에 서서 사림과 대척점 에 서있던 인물이다. 그와 훈구대신들은 사림의 탄핵등으로 자신들 의 목이 조여오자 경빈박씨. 희빈홍씨를 부추겨 주초위왕(주와초를 합하면 조씨가됨)이라는 글자를 나뭇잎에 꿀로 새겨 개미가 뜯어먹게 한후 중종에게 가져다 보여주어 의심많은 중종이 조광조를 사사케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다보니 백성들은 남곤을 간신, 죽일놈으로 간주했는데 과연 그럴까? 남곤은 사림이지만 조광조일파의 급진 개혁에 반대하고 완만한 개혁을 주장한 사람이다. 급진사림들은 선비들은 시, 그림등도 하면 안되고 오직 성리학만 공부해야한다고 주장 했고 그들은 실무보다 성리학의 명분에만 목숨 거는 이들이었다. 과거제도역시 급진 사림은 시험을 폐지하고 덕망있는 인물을 추천(사림들?)에 의해서만 뽑아야된다고 주장하며 현량과를 관철시켰고 남곤은 그 둘을 절충해서 일부 추천, 일부 시험 을 통해 뽑아야 한다고 했다.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는 사사되고 그 일파들도 죽거나 귀양가서 급진 사림들은 거의 씨가 말랐지만 당시 조광조를 관대히 처벌해야 한다고 한 이가 남곤이고 지속적으로 반대하여 조광조의 목숨이 2개월가량 연장되었다. 같이 영의정 정광필역시 조광조의 죽임에 반대하였고...이 양반도 대단한게 훈구대신이나 조광조의 급진개혁파를 이쁘게 보고 힘도 실어 주었으나 이 급진파들은 정광필도 훈구대신으로 묶어서 없어져야할 인물로 간주했음에도 조광조 의 사사에 반대하고 결국 사사당하자 남곤과 함 께 크게 슬퍼했다고 중종실록에 나와있다. 또한 남곤은 기묘사화직후 중종이 내린 공신 책록도 거부하였으며, 누군가 나를 가르켜 소인이 군자를 해쳤다해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자신이 죽기전 자신의 책을 전부 불살 랐으며 기묘사화이후 여러차례 사직을 청했으나 중종이 거절하였다. 말년에도 훈구파의 조광조일파 말살을 방관한 것에 대해 반성하며 죽기전에도 평생 마음과 행실이 어긋났으니 시호를 청하여 비석도 세우지말고 비단으로 염습도 하지말라, 자녀들에게도 나는 후대에 글을 남길 자격도 없으니 모든글을 태우라고 유언하기도 했다. 우리가 업무를 함에있어 이론과 실무가 다를 때가 많이있다. 이럴때 이론과 실무를 두루두루 섭렵한 이가 상사로서는 최고아닌가? 이론 그것도 절대적으로 이론 제일주의를 주장한 조광조의 급진개혁이 맞는것인지 이론과 실무를 적당히 타협한 남곤이 맞는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자유주제
남곤을 위한 변명(기묘사화)
07월 04일 | 조회수 75
모
모니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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