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선은 민주화를 열망하던 국민 대다수 (선거결과 최소 2/3)를 배신한 결과였다 국민들의 열렬한 민주화 운동으로 6.29 선언을 이끌어 내어 대선 직선제를 가능하게 했으나 당시 야당의 두 지도자, 김영삼과 김대중은 단일화를 안 해도 서로 승리할 수 있다는 착각에 결국 노태우에게 정권을 넘겨 줘서 군사정권의 연장이 이루어 졌고 국민들의 허탈함 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개혁이 꼬여 오늘날까지도 개혁이 안 된 이유다. 군사정권에 대한 처벌이 단순 5년 지연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군사정권과 연합을 하여 김영삼이 집권을 하게 되어 육사와 서울법대 육법당을 척결하지 못하고 적과의 동침으로 오늘날 국힘이 되었으며 결국 김영삼 세력들은 퇴임후 점진적 밀려 나게 되어 오늘날 국힘은 군사정권의 민정당과 비슷한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김대중도 집권을 위해 김종필과 연합을 할 수 밖에 없었어서 집권이후에도 박정희 정권의 후계자 김종필괴 공존을 하여 개혁이 제한될 수 밖에 없어, 디수 국민들이 고대하던 개혁은 이루어 지지 못했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정치인의 욕심으로 단일화 실패가 한국 사회의 경로를 꼬이게 한 것이다. 87년 대선에서 김영삼이 2위, 김대중 3위로 결국 책임은 김대중에게 더 추궁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김영삼은 집권 후 강력한 개혁을 했으나, 임기말 IMF로 개혁 성과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 되었고, 김대중은 당선후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해 줘 개혁은 영원히 꼬이게 만들었다. 김대중의 아웃사이더 열등감이 통합이란 허영에 빠져 개혁을 한 것이 없다. 역사를 교훈 삼아, 이재명 대통령도 아웃사이더라는 열등감과 외로움에 통합이란 허영에 빠져 개혁을 못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시길 바란다. 개혁=통합=실용=민생 이며, 공정과 정의의 실현이다. 경기의 규칙을 공정히 하시길 바란다. —- 한국 현대정치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은 모두 민주화에 큰 공헌을 한 정치인이다. 그러나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실제 국가 개혁을 얼마나 강력하게 추진했는가를 기준으로 본다면, 김영삼이 김대중보다 더 개혁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김영삼 정부가 한국 현대사의 성역을 정면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첫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당시만 해도 군사정권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했고, 두 전직 대통령을 처벌하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수반했다. 그러나 김영삼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우며 이를 실행했다. 반면 김대중 정부는 집권 후 전두환·노태우를 특별사면했다. 화해와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개혁의 강도라는 측면에서는 후퇴로 볼 수 있다. 둘째, 하나회를 척결했다. 하나회는 군 내부의 대표적인 사조직으로, 수십 년 동안 군 인사와 권력 구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영삼은 취임 직후 전격적으로 하나회 핵심 인사들을 숙청하며 군의 정치 개입 가능성을 사실상 차단했다. 이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 개혁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셋째,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했다. 금융실명제는 역대 정권이 모두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부담 때문에 시행하지 못했던 정책이었다. 김영삼은 극비리에 준비한 후 전격 발표하여 실행했다. 이를 통해 차명계좌를 이용한 비자금 조성과 검은 돈의 흐름을 크게 제한했고, 한국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물론 김영삼 정부는 IMF 외환위기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김영삼에 대한 평가는 상당 부분 절하되어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별개로 국가 개혁의 강도와 범위를 평가한다면, 군부 청산·금융 개혁·과거사 정리라는 측면에서 매우 큰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사실이다. 반면 김대중 정부는 정보통신 산업 육성, 벤처 활성화, 남북 화해 정책 등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특히 IT 산업 육성은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국가 권력 구조 자체를 바꾸는 개혁이라기보다는 경제 정책과 대북 정책의 성격이 강했다. 결국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공로와 대통령으로서의 개혁 성과를 구분해서 본다면,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기존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제도를 바꾸는 개혁의 강도는 김영삼이 김대중보다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전두환·노태우 처벌,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시행은 오늘날에도 한국 현대사의 가장 상징적인 개혁 사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개혁이 꼬인 이유] 김영삼과 김대중
06월 28일 | 조회수 140
M
Matr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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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
테헤란로 리자몽
어제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 공감 ㅎ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 공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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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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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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