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 정리와 청소를 했다. 쓰레기봉투가 세 개나 나왔다. 봉투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가던 길, 바닥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뻔했고 가까이서 보니 그냥 두고 가기가 어려웠다.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박동은 느껴지지 않았고,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차갑지 않았다. 심장마사지를 시작했다. 20분 정도였을까. 작은 몸을 조심스럽게 문지르고, 중간중간 바닥에 내려놓으며 혹시 움직임이 있는지 지켜봤다. 하지만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았고, 몸은 점점 굳어갔다. 한쪽 눈은 조금 감겨 있어 손으로 닫아주었다. 다른 한쪽 눈에는 내 모습이 비쳤다. "일어나라 살 수 있다 움직여봐" 그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늦은 걸까. 내가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이미 의미 없는 일이었을까. 결국 나는 그 새를 살리지 못했다. 어디에 묻어줄지 한참을 주변을 걸었다. 수풀이 조금 우거진 곳에 놓아줄까 생각했지만, 근처에서 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곳은 아닌 것 같았다. 오래된 폐가가 있었다. 벽에는 붕괴 위험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 대문 위에 놓인 커다란 화분 위에 새를 조심히 올려두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다음 생엔 사람으로 태어나.” 방으로 돌아오고 나서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왜 하필 그런 말을 했을까.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꼭 축복이기만 한 것도 아닌데. 자아가 있다는 것은 때로 고통을 더 선명하게 느끼는 일이기도 한데. 그런데도 나는 그 말밖에 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 삶이 좋다. 대단히 유명하지도 않고, 늘 충만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부족함의 연속에 가깝다. 하지만 그 부족함 속에서 내가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 마음이 흐려질 때도 있지만, 결국 나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하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지금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것. 오늘 작은 새를 살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을 통해 다시 생각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무언가를 느끼고, 아쉬워하고,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마음 역시 당연하지 않다. 어쩌면 오늘 내가 새에게 건넨 말은 그 작은 생명을 향한 위로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다시 확인한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은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삶이 좋다. 부족하고, 흔들리고, 때로는 유혹에 약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지금의 내가 좋다. 2026년 6월 6일. 작은 새의 눈에 비친 나를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눈동자가 마르기 시작할 때
06월 06일 | 조회수 38
우
우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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