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안 공기는 묘하게 차가워져 있었다. [고위험 감정 연결 계정 모니터링 강화] 붉은 시스템 문구는 한동안 허공에 떠 있었다. 그녀는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업데이트 벌써 시작됐네…” 남자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위험 감정 연결?” 그녀는 작게 한숨 쉬었다. “요즘 아르카디아가 이상해졌어.” “무슨 뜻이야?” “현실 의존도 높은 유저들 분류한다는 말 있었거든.” 남자는 피식 웃었다. “사람 마음까지 추적한다고?” “여긴 원래 그런 곳이잖아.” 그녀는 창밖 바다를 바라봤다. “사람들이 현실보다 여길 더 좋아하게 만드는 곳.” 등대 아래 파도 소리가 낮게 울렸다. 남자는 난간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봤다. “넌?” “뭐가.” “여기가 좋아?”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천천히 손끝으로 컵 표면을 문질렀다. “…좋았어.” 과거형이었다. 남자는 그 짧은 단어 하나에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근데 오래 있으면 안 될 거 같더라.” 그녀가 작게 웃었다. “현실에서 계속 로그아웃하고 싶어져.” 남자는 아무 말 못 했다. 사실 그는 반대였다. 현실이 힘들수록 아르카디아에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녀와 연결되어 있는 이 공간이 유일하게 숨 쉬는 곳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때였다. 띠링. 그녀의 홀로그램 화면에 또 알림이 떴다. 이번엔 영상 업로드 완료 창이었다. [REVIEW POST COMPLETE] 보상 포인트 지급 예정. 그녀는 화면을 확인하더니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주 작고 현실적인 웃음. 남자는 그 표정을 바라보다 문득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그녀는 여전히 이 세계 안에 있었지만, 이제는 자신보다 자기 삶과 루틴 쪽에 더 가까워진 사람 같았다. “나 점수 업되어서 VIP 로 승격될 거 같아.” 그녀가 무심한 척 말했다. “응?” “신분상승.”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창밖만 본 채 말을 이었다. “원래 안 하려 했는데… 누가 응원점수를 보내줘서.” 남자는 피식 웃었다. “그래.” “씁쓸해?” 그 질문이 너무 정확해서 남자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늘 중요한 순간엔 이상할 만큼 눈치가 빨랐다. “조금.”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근데 했네.” “응.” 잠시 침묵. 등대 안엔 파도 소리만 희미하게 울렸다. 한참 뒤 그녀가 아주 낮게 말했다. “너는 자꾸 날 현실 밖으로 꺼내줘.” “….” “근데 난 자꾸 현실로 돌아가려 하고.” 남자는 씁쓸하게 웃었다. “우린 반대 방향이네.” 그녀도 웃었지만 눈빛은 슬펐다. “그래서 오래 못 가는 걸지도.” 남자는 창밖 바다를 바라봤다. 푸른 달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사람은 꼭 사랑이 식어서 떠나는 게 아니라, 같은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순간부터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한다는 걸.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아직 로그아웃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그녀와의 대화
05월 23일 | 조회수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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