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안은 조용했다. 창밖 파도 소리와 그녀가 영상 편집 화면을 넘기는 소리만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남자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도 영상 올리네.” 그녀는 놀란 듯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웃어버렸다. “깜짝이야.”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어떻게?” “그냥.” 남자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오래 좋아한 사람은 이상할 만큼 자주 찾게 되는 장소들이 생기니까. 그녀는 다시 홀로그램 화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짧은 여행 영상이었다. 해안도로, 노을, 웃고 있는 아이 아바타. 그리고 잠깐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손. 남자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퀘스트 획득이라 오늘 안 올리면 안 돼.” “알아.” “생각보다 귀찮아 이거.” 남자는 피식 웃었다. “근데 엄청 열심히 하잖아.” “보상 받았으니까 해야지.”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보상을 받았으니까 해야 한다. 남자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다. 마치 관계도 언젠가부터 의무처럼 유지되어온 건 아닐까 싶어서. 잠시 후 그녀의 알림창이 울렸다. 아주 짧은 시스템음. 그녀 표정이 순간 굳었다. “왜?” 남자가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은 채 메시지창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남자는 봤다. 화면 한쪽에 떠 있던 붉은 문장. [접속 기록 동기화 완료] 그녀는 괜히 웃으며 말했다. “요즘 아르카디아 이상해.” “무슨 뜻이야?” “자꾸 접속 기록 추적한다고 하잖아.” 남자는 그녀를 바라봤다. “아직도 그거 신경 써?” 그녀는 대답 대신 창밖 바다를 봤다. 푸른 달빛이 파도 위로 흔들리고 있었다. “너는 안 무서워?” 한참 뒤 그녀가 물었다. “뭐가.” “다.” 그 말엔 설명이 없었지만 남자는 이상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들키는 것. 무너지는 것. 잃는 것. 그리고 계속 좋아하게 되는 것까지. 남자는 천천히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등대 아래로 끝없는 바다가 보였다. 물론 진짜 바다는 아니었다.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파도였고, 설계된 달빛이었고, 가짜 바람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세계 안에서의 감정만큼은 진짜 같았다. 그녀가 낮게 말했다. “나 요즘 일부러 접속 덜 해.”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아.” “화났어?” 남자는 한참 뒤 웃었다. “예전엔 화났지.” “지금은?” “요즘은… 그냥 좀 서글퍼.”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 또 그 말이었다. 짧고, 쉽고, 그래서 더 어려운 말. 남자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물었다. “근데 왜 꼭 사라질 것처럼 굴어?”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손끝으로 컵 가장자리만 만지작거렸다. 한참 뒤 그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여기 있으면…” “….” “현실이 자꾸 흐려져.” 등대 안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남자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처음엔 그냥 숨 쉬는 기분이었어.” “….” “근데 어느 순간부터 여기가 진짜 같아지고, 현실은 버티는 곳 같아지더라.” 그녀는 웃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게 무서워.” 남자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자신은 이 세계 안에서 점점 더 그녀를 현실처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는 이 세계 때문에 현실을 잃어갈까 봐 두려워졌다는 걸. 둘 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던 거였다. 그때였다. 띠링. 이번엔 남자의 알림창이 울렸다. [SYSTEM NOTICE] 사용자 보호 정책 업데이트 예정. 고위험 감정 연결 계정 모니터링 강화. 남자는 천천히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아르카디아 자체가 두 사람을 조금씩 로그아웃시키려는 것처럼.~
그녀를 찾다
05월 23일 | 조회수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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