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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23일 | 조회수 106
어찌생각

새벽 2시 13분. 아르카디아의 비는 오늘도 규칙적으로 내리고 있었다. 서버 17구역 기차역 카페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새벽 시간대엔 늘 그랬다. 접속자 대부분은 현실의 잠을 포기한 사람들이었고, 그중에서도 이 구역까지 흘러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남자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익숙한 자리. 익숙한 빗소리. 익숙한 빈 의자. 그리고 익숙하게도, 그녀는 오늘도 접속하지 않았다. 남자는 습관처럼 친구 목록을 새로고침했다. OFFLINE. 한 시간 전에도, 십 분 전에도 보던 단어였다. 그는 괜히 웃었다. 예전엔 저 단어 하나만 봐도 마음이 철렁했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덤덤해지는 순간들이 생겼다. 체념과 적응은 생각보다 가까운 감정이었다. 카페 스피커에선 오래된 피아노 곡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낯선 사람 하나를 발견했다. 여자였다. 검은 코트 차림의 아바타. 그녀는 카페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망설임 없이 맞은편 빈 의자에 앉았다. 바로… 그녀가 늘 앉던 자리였다. 남자는 순간 미간을 좁혔다. “여기 자리 있어요?” 여자가 먼저 물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 남자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누군가 그 자리에 앉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곧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공용 자리니까요.” 여자는 작게 웃었다. “근데 표정은 아닌 거 같은데.” 남자는 아무 말 못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열차 안내 전광판엔 존재하지 않는 도시 이름들이 흘러갔다. 루멘. 에델. 세레니아. 모두 아르카디아 안에만 존재하는 가상 도시들이었다. 여자는 창밖을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누구 기다려요?” 남자는 무심한 척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니고요.”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다들?” “이 시간에 여기 오는 사람들.” 그녀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커피를 주문했다. 바닐라 라떼. 남자는 순간 손끝이 멈췄다. “…그 메뉴 좋아하세요?” 여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맨날 마시던 거 봐서.” 남자는 천천히 그녀를 바라봤다. “혹시…” 여자는 웃었다. “아. 오해는 하지 말고. 당신 생각하는 그 사람은 아니에요.” 그녀는 컵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말을 이었다. “근데 자주 봤어요.”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누구를요?” “흰 코트 입은 여자.” 심장이 아주 천천히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남자가 물었다. 여자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안다고 하긴 애매하고.” “그럼요?” “그 사람… 원래 여기 오래 있었거든.” 남자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여자는 창밖 비를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혼자 오래 못 있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 “근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 접속 끊기더라.”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켜쥐었다. 여자는 남자를 힐끗 바라봤다. “당신 때문이었구나.” “뭐가요?” “그 사람이 계속 돌아오던 이유.” 카페 안 공기가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멀리서 기차 지나가는 효과음만 희미하게 울렸다. 여자는 작게 웃었다. “근데 신기하네.” “뭐가요?” “당신 아직 여기 있잖아.”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떠난 뒤에도 계속 같은 장소를 맴도는 자신이 갑자기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그때였다. 띠링. 익숙한 알림음. 남자의 시선이 허공으로 떠오른 메시지창에 멈췄다. [SYSTEM NOTICE] 사용자 ‘Lune_402’ 접속. 그 순간 남자의 심장이 세게 흔들렸다. Lune_402. 그녀의 아이디였다. 남자는 거의 반사적으로 친구 목록을 열었다. ONLINE. 초록불이 켜져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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