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 MZ 주니어 이직기

04월 24일 | 조회수 598
수박먹고싶다

또 이 문제의 MZ를 어떤 운 없는 회사가 뽑아 주었나, 애잔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긴 글입니다. 저의 5개월간을 담고 있어 장황한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20대 후반 주니어입니다. 중소기업 다니면서 저성과자로 분류되고, 문제 많다고 불렸습니다. 그 과정 중 마음의 상처가 조금 생겼습니다. 회사에서는 아무도 경험이 없는 정부지원사업을, 주니어 신입이었던 제게 맡기고 KPI로 설정시켰습니다. 지원금 1억 가량을 받을 확률이, 경쟁률로만 따지면 5%가 채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회사의 한 해 공식 예산으로 잡힌 채 '이거 안 되면 우리 이번 해 ㅈ된다'고 회의 석상에서 공식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대표자 본인이 작성해야 하는 사업계획서상 5년치 로드맵조차도 혼자 써내야 했습니다. 개발자가 무얼 하고 어떤 걸 개발하는지, 마케터는 어떤 목표로 캠페인을 돌리는지, 기획자는 무슨 의도로 신기능을 기획 중인지, 팀원들과도 논의할 수 없었습니다. 혼자 알아서 파악해서 쓰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하시더라고요. 대표님도 계획을 공유해준 적이 없어서, 아니 애초에 계획을 짜지를 않으셔서, 제가 적당한 말로 회사의 계획을 지어내서 붙여야 했습니다. 제가 중간중간 보고드린 사업계획서 산출물에 대해 대표를 포함한 구성원(5명도 채 안 되었지만요) 그 누구도 피드백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라고 계획을 함께 말씀드려도, 대충 고개를 끄덕이시고 이후 저는 일주일쯤 방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쯤 '새 AI 서비스가 나왔다, 이걸 사용해서 사업계획서를 처음 논리 구상부터 다시 써보자'고 말씀하시며 일을 처음부터 뒤엎었습니다. 15개 가량의 사업계획서가 이렇게 초안만 탄생한 채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저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었습니다. 해당 회사에서 해당 업무를 맡은 지 만 1년이 채 안 되는 시점, 그 어떤 제대로 된 교육도 도움도 외주도 없어서 오픈카톡방에서 진행되는 스터디만을 전전하다가요. 그런 상황에서도 한 해동안 합격한 개수도 3개였고, 지원액수로는 5천만원쯤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으셨나 봅니다. 저 혼자 알아서 작성하고 알아서 따와야 마음에 드셨을 텐데, 팀원들과 상사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만들었으니까요. 자정에 제출해야 하는 지원사업에, 대표자만 넘겨줄 수 있는 서류를 23시 반에서야 넘겨줘서 사업에 제대로 지원을 못 해도 결국 그것은 제 탓이 되었죠. 저는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10분 단위로 업무 계획을 짜고, 그것을 검토받고, 실제 실천 여부를 보고, 그 업무 투입 시간의 효율을 평가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습니다. 눈치 안 보고, 제가 계획하고 승인받은 타임테이블대로만 움직이면 되잖아요. 그럼 제가 효율을 냈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니. 그간의 마음 지옥에 비하면 차라리 천국이라고 생각해서 수행했습니다. 한 달간 그렇게 살면 1:1 면담을 해준다고 했습니다. 이후 업무를 논의하고 재평가를 해준다고요. 그것마저도 미뤄지다가 간신히 시간이 잡혀서 면담에 들어갔습니다. 평가 내용이란 즉, '한달간 저성과자 프로그램은 잘 수행했다. 승인받은 계획을 잘 이행했고 효율을 보였다. 하지만 그게 진짜 네가 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행간의 의미를 잘 읽어라. 너는 태도를 보여줬어야 했다. 더 열심히, 더 잘 하려고 노력하는 열의를 보여야 했다.'... 웃겼습니다. 이 회사에 지원한 직무도 이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시작하자마자 커리어가 꼬이는구나 싶어 이 취업난에 그냥 생퇴사를 질렀습니다. 정말 정말 웃긴 건, 제가 처음으로 그 회사의 근로계약서를 받은 날이 그 퇴사날이었다는 것입니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정신이 없어서, 그런 말씀을 하시며 미뤄 왔던 근로계약서를... 제가 퇴사하면 법적인 문제가 될까 싶어 퇴사날에서야 사인 같이 하라고 내밀어 주시더라구요... ㅎㅎ 돈을 안 벌 수는 없으니 다시 제 직무 찾아 나섰습니다. 한 달간 하루에 2~3개 공고를 지원했습니다. 제대로 서류전형을 준비하는 게 처음이라 쉽지 않았습니다. 한달 쯤 지나니 이제 막 이력서다운 이력서가 조금씩 갖춰졌습니다. 그러다 한 중견기업 공고를 봤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점점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 여기, 내가 정말 좋아하고 궁금해하던 분야의, 내가 하고 싶던 직무구나. 정말 내가 갈 자리면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이 드나 봅니다. 서류를 쓰면서도, 서류 합격 연락을 받고 면접을 준비하면서도, 예상 질문을 백 개를 뽑아 답변 전략을 세우고, 외우되 외운 티를 내지 않은 답변을 연습하고(ㅋㅋㅋ), 실무 면접 보다가 정말 이 기업에 궁금한 것들이 많아져서 오히려 제가 질문을 쏟아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또한 열심히 준비해 임원 면접에서 이야기하면서, 점차점차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 여기 정말 들어가고 싶구나, 누가 보면 그냥 흔한 중견기업일 수도 있는데 저한테는 이 곳이 진짜 너무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사실 이렇게 정식 프로세스를 밟는 채용 과정이 저는 전부 처음이었거든요. 중소기업에서는 이런 절차를 밟은 적이 없어서, 실무면접이란 것도 임원면접이란 것도 전부 처음이었습니다. 지원자 한 명 한 명에게 이런 관심과 시간을 기울여 준다니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그 첫 기억들이 모두 소중하고 행복하게 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최종 합격을 했거든요. 이제 막 두 달이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상사분들과 동료분들을 만나, 열심히 챙겨주시는 것에 황송해하며 다녔습니다. 제가 부족하여 제대로, 받은 만큼 감사를 드렸는지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이 최근의 가장 큰 고민거리일 만큼요. 아직 제가 잘 적응했는지 고민이 됩니다. 처음 써보는 압존법이라는 것도 잘 쓰고 있는게 맞는지, 감사하게도 회사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선배님들께서 시간 내어 교육해주시고 계신데 그걸 제가 어떻게 더 빨리 익히고 사용해서 저희 부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업무 외적으로 선배님들께 어떻게 대해야 제대로 된 직장 매너인 건지…공부할 것이 너무 산더미네요. 어느덧 상반기도 반을 넘은 지 한참 되었습니다. 제게는 처음 해 보는 도전과 성취가 있었고, 그에 제대로 적응하려 애쓰며 남은 한 해를 보낼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상반기는 어떻게 지나가고 있나요?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시든, 무엇에 결핍을 느끼고 어떤 성취를 이루셨든, 부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시기만을 바라겠습니다. 험한 세상과 사회를 온몸으로 버텨 오신 선배님들. 그리고 이곳에 어떻게든 발 내디뎌, 무겁고 무거운 첫 걸음을 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제 또래 MZ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긴 회고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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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사각형
    21시간 전
    19년차 직장인입니다. 님같은 후배가 있다면 같이 수박먹고 싶네요. 좋은 상사, 동료분들 만나 감사하며 행복한 직장생활 하시게 된건, 그만큼 간절히 원했고 노력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심 잃지 마시고, 지금의 마음 지키며 일하실 수 있길, 그리고 또 누군가의 좋은 상사, 동료가 되어주시길 바라요. 응원할께요:)
    19년차 직장인입니다. 님같은 후배가 있다면 같이 수박먹고 싶네요. 좋은 상사, 동료분들 만나 감사하며 행복한 직장생활 하시게 된건, 그만큼 간절히 원했고 노력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심 잃지 마시고, 지금의 마음 지키며 일하실 수 있길, 그리고 또 누군가의 좋은 상사, 동료가 되어주시길 바라요. 응원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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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회사에서 풀지 못한 고민, 여기서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가 풀지 못한 실무적인 어려움, 사업적인 도움이 필요한 적이 있으셨나요? <리멤버 커뮤니티>는 회원님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입니다. 회원 가입 하고 보다 쉽게 같은 일 하는 사람들과 소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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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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