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4월 3일입니다. 제주의 눈부신 풍경 뒤에 숨겨진, 우리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제주 4·3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해방 직후인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숨졌고, 이후 제주도민들의 항거와 총파업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강하게 탄압되었고, 1948년 4월 3일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하던 무장 세력의 봉기와 함께 제주는 더 깊은 비극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고, 제주도는 오랫동안 빨갱이 섬이라는 낙인 아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가장 잔인했던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은 공포였습니다. 낮에는 군경이, 밤에는 무장대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어제까지 이웃이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지목해야 했습니다. 마을 공동체는 무너졌습니다. 무장대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스러진 사람들, 그 당시 제주는 이름을 짓는 것 또한 신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같지 않은 이름들을 받은 아이들이 많았죠. 가족이 눈앞에서 희생돼도 소리내어 울 수 없었습니다. 울음조차 연좌의 이유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주 사람들은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공식 조사 결과 제주 4·3의 희생자는 1만 4천 명 이상으로 확인됐고, 이후 추가 조사에서 더 많은 피해가 드러났습니다. 그중에는 여성, 어린이, 노인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비극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다시는 만들어서는 안 되는지 묻는 역사입니다. 2003년에 와서야 국가의 공식 사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노력은 우리가 이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어야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되고, 슬픔은 나누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난 4.3 추념식장에서 손녀가 할머니에게 올린 편지를 첨부하며 글 마칩니다. 영상을 보시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이미지도 함께 올려요.
할머니는 생선을 드시지 않습니다.
04월 03일 | 조회수 533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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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전
4.3 평화공원 갔다가 묘비에 적힌 이름들이 특이한 게 많아서 물어보니 동명이인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 무장공비와 이름이 같단 이유로 억울한 죽음이 있었어서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육지와 떨어져 있어서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인 것 같아요. 많이들 알고 기억했으면…
4.3 평화공원 갔다가 묘비에 적힌 이름들이 특이한 게 많아서 물어보니 동명이인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 무장공비와 이름이 같단 이유로 억울한 죽음이 있었어서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육지와 떨어져 있어서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인 것 같아요. 많이들 알고 기억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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