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1985년 명동 다방의 유리창에 남은, 우리의 첫눈

02월 17일 | 조회수 50
좋은결과

1985년 초겨울, 명동 거리는 유난히 햇살이 투명했다. 버스에서 내리다 떨어뜨린 수첩을 누군가 주워주었고, 그 사람이 그와의 시작이었다. 단정한 회색 정장에 반듯한 구두를 신은 그는 근처 은행에 다니는 은행원이라 했다. 수줍은 미소와 함께 “다음엔 조심하세요”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이상하게 오래 맴돌았다. 며칠 뒤, 약속도 없이 다시 마주친 곳은 명동 골목의 작은 다방이었다. 벽에는 가수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스피커에선 이문세의 노래가 잔잔히 흘렀다. 우리는 마주 앉아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두고도 한참을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는 창가 자리를 좋아했다. 유리창 너머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언젠가 함께 여행을 가자고 조심스레 말하던 그 눈빛이 아직도 선하다. 퇴근 후면 그는 은행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명동성당 앞 계단에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고, 밤이 되면 네온사인 아래를 천천히 걸었다. 손끝이 스칠 때마다 가슴이 몽글몽글해졌다. 그 시절의 우리는 서로의 미래를 잘 알지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영원할 거라 믿었다. 어느 날, 그는 작은 봉투를 건넸다. 은행에서 쓰는 편지지에 또박또박 적힌 고백이었다. “당신과 걷는 명동의 밤이 제 하루 중 가장 빛나는 시간입니다.” 그 문장을 읽던 순간, 세상이 조용히 환해졌다. 시간은 흘러 각자의 길로 멀어졌지만, 명동을 지날 때면 아직도 그 다방의 커피 향이 떠오른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그 시절의 우리가 참으로 순수했고 서로를 진심으로 아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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