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월의 제이켠입니다.

01월 24일 | 조회수 1,576
쌍 따봉
영포티정태

안녕하세요. 다들 1월 잘보내고 계신가요? 이 달은 유독 길게 느껴지네요. 왜인진 모르겠지만 ^^; 이전 글에서 댓글로 응원을 많이 해주신 덕분에 에세이집을 내보고자 하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브런치에 연재를 해볼까 하는데요. 커뮤니티 특성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 뭔가 실례가 아닌가 싶지만, 여기도 올려달라는 요청이 있어 올려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영[0]이 될 수 있는 용기 솔직히 말하면 어려웠다. 받아들이는 게. 20년의 음악 생활을 한켠으로 미뤄두고 생활비를 위해 다른 어떤 일을 한다는 사실이. 나는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 감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 맛 좀 봐라 하는 그런 벌. 래퍼라니, 참 희한한 직업으로 용케도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제이켠”이라는 이름을 하나 만들어서, 그걸 외투처럼 걸치고 다녔다. 방송에도 나가봤고 수천 명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공연도 해보았다. 하지만 20년짜리 나의 “래퍼 경력”은 서울에서, 이 사회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쇼미 더머니 11이 끝났을 때, 나는 뭔가 달라질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다. 다섯인가 여섯 번째 도전 끝에 얻은 성과였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 감각은 연기처럼 희미했지만 정확했다. 결국 나는 우울증에 빠졌고, 그 안에서 꽤 오래 헤엄쳤다 어느 날 상담실에서 울었다. 찔찔 짰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나는 의사에게 말했다. “저는 실패한 사람인게 너무 확실하니까요. 이렇게 우는 것조차 꼴사나워 보인다는 것도 알아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는데, 잃어가기만 합니다. 키우던 고양이들도 다 죽고, 나이는 먹을 대로 먹고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어요” 희망을 서랍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볼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서랍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 친구들 중에는 잘 나가는 래퍼들이 많다. 저작권료로 생활이 가능한 사람들.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그들을 멀찍이 바라보면 내 그림자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나는 거창한 걸 원한 게 아니었다.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을 만큼만 돌아오길 바랐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 큰 바람이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지금도 그때의 냄새가 난다. 축축한 우울감의 냄새. 결국 나는 직장을 구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린 것처럼. 쇼미 더머니 11에서 인연이 닿았던 박재범에게 연락했다. 그는 힙합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아주 멀리까지 간 사람이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A&R 직원을 뽑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원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건 무대에서 내려오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뮤지션으로서의 삶은 거기서 일단 0이 된다. 20년 동안 맞춰오던 퍼즐을 와르르 무너뜨려야 했다. 숨 쉬듯 꾸던 꿈을 이제는 멈춰야 했다. 용기를, 정말로 큰 용기를 낸 셈이다. 그랬다. 영[0]이 될 수 있는 용기는 무겁고 슬펐다. 하지만 어쩌겠나, 20년 동안 음악을 해왔으니 관련된 일을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또 음악 관련 일이라면 뭐든 자신이 있었다. A&R. 신인을 찾고, 음악의 방향을 잡고,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시장을 읽는 일. 엔터테인먼트의 꽃이라고들 말한다. 아무튼 박재범에게 연락을 했고, 그도 그럴 것이 분명 곤란했으리라. 하지만 이력서를 넣으면 면접을 주선해 주겠다고 하고 아주 적극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나를 대해주었다. 나는 이력서를 내가 쓸 수 있는 힘껏(?) 작성해서 제출했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담당 실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실장님은 내가 쇼미 더머니 11을 촬영할 때 같은 팀이었기에 자주 마주치며 인사하던 사람이었다. “원래라면 절차대로 이력서를 받고 면접을 본 후 말씀드리는 게 맞지만 형님의 번거로움을 덜어드리고자 솔직하게 말씀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뮤지션의 이력과 A&R의 이력은 엄연히 다른 부분이고, 내가 채용된다 하더라도 나에게 일을 시킬 상사들이 모두 나보다 어린 나이이다. 조직을 위해서 그런 부분을 컨트롤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나는 바로 이해했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희미하게 무언가 희망 같은 것이 파스스 흩어지는 걸 이미 느끼고 있었다. 나는 작곡도, 작사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 보니 굉장한 능력자군요) K-pop 작곡가로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말이 쉽나. 그것 또한 쉽지 않은, 결과가 단 1%도 보장되지 않는 그런 분야였다. 심지어 작곡 활동을 많이 시도했었지만 선택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걸 무능함이라고 불렀다. 실패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실패하면 그냥 좀 곤란해지는 정도라고 생각했어도 됐을 것이다. 뮤지션으로 사는 삶은 나에게는 루이뷔통 재킷 같은 것이었다. 멋지지만, 너무 비쌌다. 내려놓는 것, 받아들이는 것 그게 그렇게나 어려웠다. 지금은 나는 온전히 받아들였나? 받아들였다기보다는 모든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다. 겨우 겨우 구한 직장과 그 직장인의 삶이 비로소 ‘정상적인’ 삶으로 되돌려진 것뿐이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이전의 나는 비정상이었다는 얘기가 되니까 그 생각조차 흘려보내기로 했다. 출근길 버스에 몸을 구겨 넣는 일 낯선 싸구려 양복 걸치고도 꿈을 꾸는 일 그것을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사람들은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는 웃는다. 속으로는 이미 늦은 건 늦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랬다. 영[0]이 될 수 있는 용기는 무겁고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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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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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루룩드링
    12시간 전
    제이켠 인더 하우스 베이베
    제이켠 인더 하우스 베이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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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쌍 따봉
    영포티정태
    작성자
    4시간 전
    이걸 아는 분이라면 저랑 비슷한 또래 시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이걸 아는 분이라면 저랑 비슷한 또래 시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0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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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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