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1일. 롯폰기 힐즈 모리타워 52층. 도쿄 시티 뷰의 유리창은 차가운 수술대 위처럼 매끄러웠다. 그 창 너머로 보이는 도쿄타워는 어두운 도시라는 지도 위에 박힌 거대한 붉은 핀 같았다. 사람들은 그 핀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저마다의 소원을 빌거나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내게 그 풍경은 정교하게 설계된 시뮬레이션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숫자로 이루어진 세계, 모든 것이 계산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의 직업병 때문일지도 몰랐다. 여의도의 한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은 명확했다. 수조 원의 자금이 움직이는 궤적을 쫓고 0.1%의 수익률 차이를 분석하는 것. 사람들은 나를 금융 전문가라 부르며 선망 어린 시선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숫자의 이면에는 ‘2026년 3월 31일’이라는 잔인한 숫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내 사원증의 유효기간이자, 내가 이 사회에서 기능할 수 있도록 허락된 마지막 날짜였다. 계약직이라는 꼬리표는 마치 시한폭탄의 타이머처럼 매일 아침 내 목소리를 갉아먹었다. “이 전망대의 입장권에도 유효기간이 있지.” 나는 주머니 속의 티켓을 만지작거렸다. 오늘 밤이 지나면 이 티켓은 종잇조각에 불과해진다. 나의 커리어도, 도쿄에서의 이 꿈 같은 시간도 결국은 만기일이 정해진 파생상품과 다를 바 없었다. 타인의 자산은 치밀하게 관리하면서 정작 내 인생의 하방 리스크는 제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씁쓸한 냉소로 변해 입가에 머물렀다. 도쿄타워의 조명은 변함없이 견고했다. 1958년에 세워진 저 철탑은 수많은 불황과 지진, 그리고 수조 번의 계절 변화를 견뎌냈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마주하는 진실처럼, 사물은 때로 인간보다 더 정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철골 구조가 맞물려 거대한 탑을 지탱하듯 인생 역시 무수한 선택과 우연이 맞물려 지탱된다. 지금 내가 겪는 불안은 설계도의 오류가 아니라 더 높이 쌓아 올리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하중 테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융 시장에서는 ‘바닥’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바닥을 확인한 수치만이 반등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2025년의 마지막 날 도쿄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 불안의 바닥을 확인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시계 바늘이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도쿄타워의 불빛이 잠시 휘청이는 듯하더니 더욱 선명하게 타올랐다. 내년의 나는 여전히 계약 갱신 여부를 확인하며 메일함을 뒤적일 것이고, 여의도의 차가운 빌딩 숲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밤 본 저 붉은 빛의 채도는 잊지 않을 것이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 효율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의지 같은 것들 말이다. “리스크 없는 수익은 없다.” 투자의 기본 원칙을 되새기며 나는 유리창에서 손을 떼었다. 2026년이라는 새로운 장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불안은 여전했지만, 그것은 동시에 내가 아직 이 시장에서 살아남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나는 코트 깃을 세우며 인파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제 계산기 대신 마음의 속도계에 의지해 걸어갈 시간이었다.
붉은 탑의 유효기간
25년 12월 30일 | 조회수 279
A
AoBart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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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굴레방다리
25년 12월 30일
그 순간 바닥에서 심상치 않은 흔들림이 감지되었다. 진도 9.5였다. 나는 그렇게 그날 2026년을 보지 못하고 난카이 대지진이라 불리는 역사적 사건의 희생양으로 죽었다. 그런데 깨어나보니 붉은 티셔츠를 입은 수많은 인파 속이었다. 2002년 여름이었다.
- <중2가 주식을 너무 잘해>
그 순간 바닥에서 심상치 않은 흔들림이 감지되었다. 진도 9.5였다. 나는 그렇게 그날 2026년을 보지 못하고 난카이 대지진이라 불리는 역사적 사건의 희생양으로 죽었다. 그런데 깨어나보니 붉은 티셔츠를 입은 수많은 인파 속이었다. 2002년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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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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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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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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