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 영어 되는 사람 있어요?” 대표님이 갑자기 벌컥 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모든 직원에게 공지하듯 물어봤다. 그때 팀장님이 나를 지목해 “어… 정태님 영어 좀 하실걸요?”라고 1초 만에 대답했다.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 나는 그렇게 영상 편집 직원에서 갑자기 해외영업팀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롤러코스터 같은 행보인가. 사실 나는 음악 생활을 18년 가까이 하다 수입이 유지되지 않아 직장을 얻게 되었다. 글로만 보면 이렇게 쉽게 “취직했다”로 귀결되지만, 정말 어려웠다. 그나마 갖고 있던 스킬인 영상 촬영·편집으로 이력서를 냈지만 60군데 중 딱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그중 한 곳인 우리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미용기기를 제조하고 판매, 마케팅까지 하는 회사이다. 이야기가 좀 샜는데, 아마 팀장님은 내가 [오랫동안 음악했음 → 팝송을 많이 들음(추측) → 영어 잘함] 이런 알고리즘으로 나를 추천한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전혀 해본 적 없는 업무를, 심지어 사수도 없이 시작했다. 아니, 팀 자체가 새로 개설된 것이었다. 우리 회사는 사실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새로운 직무가 맡겨졌을 때 당황하긴 했지만 거부감은 없었다. 대표님과의 면담 때 “영어를 좋아하긴 합니다만 잘하지는…” 이라고 말하자 대표님이 말을 자르며 “그럼 그걸로 된 거예요. 해외영업 파트가 우리 회사의 핵심이 될 거예요. 한번 꾸려보실 수 있겠어요?” 라고 깜빡이 없이 들어오셨다. (뭔가 희한한 표현 같군요) 아무튼 나는 수락했고, 그날 이후 아침마다 회사에 1시간 반 정도 일찍 도착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약 1년 동안 어쩌다 보니 그게 유지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다. 나는 그렇게 끈기가 있지도, 대단한 능력이 있지도 않다. 그냥 ‘습관을 들여보자’ 정도였다. 그렇게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유튜브로 영어 강의를 보고, 회사에 도착해서는 ChatGPT와 함께 스몰톡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쯤 되면 많은 이들이 ‘아… 이렇게 영어 실력자가 되었다는 거군?’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여전히 나는 걸음마 수준이다. 다만 해외 전시회에서 바이어에게 우리 제품을 겨우 설명할 수준까지는 되었다. 다행히 이런 점들이 나에게는 재미로 다가왔다. 사실 해외 박람회는 굉장히 고단하다. 우리가 제조하는 미용 장비는 개인용 조그마한 기기가 아니라 피부관리 숍에서 사용하는 큰 장비라, 그걸 일일이 포장하고 개봉하고 설치하고, 부스도 정리해야 한다. 후우… 일이 많다. 아무튼 해외 출장이란 말을 들으면 “와, 여행 가는 것 같고 좋겠다”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었다. 그 와중에 영어로 제품 설명까지?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어찌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식 전개처럼, 정말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습관의 힘이다. 이 얼마나 클리셰한 말인가. 하지만 정말 하루에 10분, 20분, 30분 시간을 늘려가고, 뭔가 대단하게 해내겠다는 것보다는 ‘이 정도면 좋아, 꾸준히 했잖아’ 라는 마음만으로도 무언가는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여전히 불안하고 어설프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회사는 조금씩 커졌고, 지금은 어엿한 구조를 갖춘 회사가 되었다. 나에게도, 회사에게도 뜻깊은 일이다. 사회 초년생이나 다름없는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준 대표님에게 감사하고, 스스로에게도 칭찬해주고 싶다. 아, 참고로 나는 40세다. 음악을 오랫동안 해왔고 결국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래서 늘 실패자라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하지만 작은 걸음이 의미가 없지는 않더라. 1년, 2년…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스스로 격려해주고 싶다. 마흔의 사회 초년생 이야기가 나름의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 사진은.. 음악할때의 나, 나와 함께 1년을 버텨준 영어 필기노트, 홍콩 박람회에서 부스 세팅을 마치고. 모두 모두 행복한 연말되세요 :)
40살, 음악하다가 사회초년생 된 이야기
12월 23일 | 조회수 9,789
영
영포티정태
댓글 10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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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Joyonghi
3일 전
어??? 제이켠님?????
어??? 제이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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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Joyonghi
3일 전
아니 정태라는 닉 보고 움찔했는데 사진 뭐임ㅋㅋㅋㅋㅋ 레알이셨네
아니 정태라는 닉 보고 움찔했는데 사진 뭐임ㅋㅋㅋㅋㅋ 레알이셨네
8
영
영포티정태
작성자
3일 전
여기서 알아볼줄이야 ㅋㅋ 반가워요^^ 제 회사생활
적응기 어떤가요
여기서 알아볼줄이야 ㅋㅋ 반가워요^^ 제 회사생활
적응기 어떤가요
30
리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회사에서 풀지 못한 고민,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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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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