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스토리) 한나라 유방이 소싯적 탕아였다고?

09월 09일 | 조회수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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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 따봉
X전략지식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중국사에서 가장 극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출신 성분부터 당시의 주류와는 달랐습니다. 몰락한 귀족도 아니고, 유학에 통달한 지식인도 아니었습니다. 하급 관리로 이름을 올리기도 전에 술과 여색을 즐기며 허송세월을 보내던 동네 건달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출신의 비천함이 오히려 유방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에게는 세습된 권력이나 전통적인 교양이 없었지만, 대중의 마음을 읽는 감각과 상황을 꿰뚫는 현실적 지혜, 그리고 필요할 때 과감히 결단을 내리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요소가 모여 결국 진나라 멸망과 혼란의 전국 말기 속에서 유방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유방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무책임하고 방탕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농사일을 싫어했고, 맡은 일에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허풍과 호탕함이 어울려 주변 사람들에게 독특한 매력을 풍겼습니다. 일화에 따르면, 그는 술자리를 좋아하여 늘 빚을 졌고, 잔치에 가서는 주인 몰래 고기를 몰래 챙겨가기도 했습니다. 또 가끔은 친구들의 경사 자리에 가서 축하한다고 하면서 빈손으로 술만 얻어마시다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거침없는 태도와 호방한 성격, 그리고 어딘가 인심을 끄는 웃음 덕분에 오히려 주변에 사람이 몰렸습니다. 이렇듯 평범한 젊은 시절의 일화 속에서도 이미 민중과 같은 눈높이로 어울리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카리스마가 드러났던 것입니다. 그의 인간적인 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내 여후와의 관계입니다. 여후는 단순히 황후로서가 아니라 유방의 삶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동반자였습니다. 가난하고 불안정한 젊은 시절부터 여후는 유방을 뒷바라지했고, 그가 떠돌이 생활을 할 때도 가정을 지켰습니다. 유방이 반란군에 몸을 담고 전쟁에 나설 때 여후는 집안을 지탱하면서도 남편의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나중에 한나라를 세운 뒤 여후가 정치적 권력을 잡아 여씨의 섭정을 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유방이 그녀를 신뢰했고 또 그녀 역시 현실 감각이 뛰어났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후는 냉혹한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유방이 스스로 가진 냉정한 면모와도 닮아 있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부부 관계를 넘어, 권력과 생존의 파트너십이었습니다. 유방의 개인적인 장단점은 역사 속 사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는 솔직하고 꾸밈없는 성격으로 귀족적 체면이나 예법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농담을 주고받는 성정이었기에 민심을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권력 유지에 있어서는 냉혹했습니다. 특히, 천하 통일의 일등 공신 한신을 숙청한 사건은 그가 필요할 때는 의리나 공로보다 권력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냉정한 군주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영웅적 측면에서 유방의 가장 큰 능력은 사람을 쓰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책략에 있어서는 장량에게, 군사적 전투에서는 한신에게, 정치적 안정에는 소하에게 의존했습니다. 예컨대 팽성 전투에서 항우에게 크게 패배했을 때 대부분의 군웅은 궤멸했지만, 유방은 인재를 믿고 다시 병력을 모았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인재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태도는 그가 천하를 다시 일으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황제가 된 이후 유방의 업적은 창업 군주의 위상에 걸맞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법가적 강압 체제였던 진나라와는 달리, 보다 유연한 정치와 민심 안정에 집중했습니다. 진나라가 무너진 원인이 지나친 세금과 노동 착취, 법의 엄격함에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유방은 과도한 법과 형벌을 완화하고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펴며 새로운 왕조의 정통성을 다졌습니다. 동시에 그는 유교를 국가의 이념적 기반으로 삼아 제국의 질서를 구축했습니다. 이 결정은 후대 한 제국의 수백 년 통치뿐 아니라 중국 문명의 전통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그는 중앙집권적 체제와 제후 분봉 제도를 병행하며 왕조를 안정시켰습니다. 전통 귀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과 측근을 제후로 삼되, 동시에 황제권을 흔드는 강력한 봉건 세력을 억제하는 균형 전략을 취했습니다. 이는 한 제국이 수백 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제도적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업적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방은 단순히 진나라의 뒤를 이어 새로운 왕조를 세운 창업군주가 아니라, 사실상 중국 최초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제국 질서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진시황의 진나라는 통일의 선구적 시도였지만 지나친 폭정으로 짧게 끝났습니다. 그러나 유방의 한나라는 유교적 명분과 현실적 제도를 결합해 장구한 제국을 출범시켰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실질적인 춘추전국시대 최후의 승리자이자 중화제국의 창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과 비교하자면,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와도 비견될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혼란한 공화정을 종식하고 안정적인 제국 질서를 세운 것처럼, 유방 또한 전국시대와 진의 폭정을 끝내고 제국의 질서를 세웠습니다. 출신 성분은 다르지만, 두 인물 모두 혼란을 정리하고 제국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평행선을 보여줍니다. 결국 유방은 방탕하고 무책임했던 청년에서, 냉정하지만 민심을 읽는 능력이 뛰어난 현실주의자로, 그리고 마침내 제국의 창건자로 변모한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인간적인 허점과 영웅적 능력, 사소한 술자리의 농담에서부터 대륙의 운명을 바꾼 결단에 이르기까지, 유방의 삶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모순과 가능성이 얼마나 극적으로 역사의 무대 위에서 발현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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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 따봉
    그게다그거
    억대연봉
    09월 18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추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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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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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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