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 찬 채로 비워지다

25년 08월 01일 | 조회수 335
A
금 따봉
AoBart

나는 서울 시내를 도는 출퇴근 버스였다. 아침과 저녁, 내 몸 안엔 수십 명의 인간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나를 말없이 탔고 아무 말 없이 내렸다. 나는 매일 비워지고 다시 채워졌다. 그게 내 존재 이유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그녀는 내 안에 흔적을 남겼다. 처음 그녀를 태운 건 봄이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었고 햇빛은 가득했지만 하늘은 뿌옇게 흐려 있었다. 그녀는 마스크도 없이 창가에 앉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로 꽉 찬 버스 안에서 그녀는 오히려 텅 빈 구석처럼 보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비워지는 것보다 채워진 채로 고요한 것이 더 외롭다. 그녀는 항상 같은 시간에 탔다. 언제나 똑같은 좌석. 말없이 창밖을 보거나 눈을 감고 음악을 들었다. 그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짜증 내지 않았다. 버스 안의 시선들은 서로를 밀치고 부딪혔지만 그녀만은 나와 닿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나를 탔지만 나를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알고 싶었다. 그녀의 휴대폰 화면이 한 번 깜빡인 적이 있다. "○○병원 응급실" 그리고 "수술 일정 확인" 그날 이후로 나는 정차 위치를 몇 센티미터씩 조정했다. 그녀가 탄 뒤엔 진동을 줄였고 급커브에선 조심히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나는 기계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 마음이 불규칙해질수록 오히려 노선은 흔들렸고 정비기사는 “기어가 늙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몰랐다. 내가 그녀를 위해 고장나고 있다는 걸. 어느 날, 그녀는 사라졌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 나는 같은 정류장에서 항상 문을 열었고 그 자리를 비워 두었다. 다른 사람이 앉으면 문을 닫지 않았다. 몇 초 늦춰서 다시 비우게 만들었다. 그 자리는 그녀의 것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그 자리만큼은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었다. 다섯 번째 주 화요일 그녀가 돌아왔다. 조금 야위었고 머리는 짧아졌으며 손에는 약봉지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보다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급하게 문을 닫고 싶었지만 천천히 열어야 했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나는 그녀를 기다리는 존재여야 했으니까. 그녀는 앉아서 잠들었다. 그날 나는 아무런 사고 없이 정시에 도착했다. 엔진이 조용했고 사람들은 불만 없이 내렸다. 마지막으로 내린 사람은 그녀였다. 계단에서 내리기 직전 그녀는 창문에 손을 올리고 조용히 말했다. “고마웠어요. 언젠가 알아챌 줄 알았어요.” 나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엔진은 곧 교체되었고 새로운 버스가 투입됐다. 나는 차고지에 들어가 해체되었고 부품은 낱개로 흩어졌다. 하지만 그 좌석만은 어느 정비공이 조용히 보관했다. “이상하게 말이야 이 시트는 다 쓴 것 같은데 누가 손을 대면 따뜻해.” 사람들은 몰랐다. 그 자리가 단 한 사람을 위해 몇 달간 비워졌다는 사실을. 버스가 아닌 누군가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걸. 나는 꽉 찬 채로 달렸지만 오직 그녀에게만 비워진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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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 따봉
    본투비한량
    25년 08월 03일
    비워진 몇 달간이 다른 누가 그녀를 사랑한 시간인가요
    비워진 몇 달간이 다른 누가 그녀를 사랑한 시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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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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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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