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이 사건의 발단은 지난 6월, 블라인드에 올라온 ‘그 회사 개발팀 여자분, 진짜 AI 아닐까요?’라는 글이었다. 당시엔 다들 농담이라 치부했지만, 난 그 글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왜냐하면, 그 'AI 여자'가 내가 두 달째 만나고 있는 썸녀였기 때문이다. —— 2 처음 만난 건 교대역 근처 '분위기 있는' 카페였다. “너무 바쁘게 사시네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하루에 3번씩 스쿼트 하시는 거, 존경스러워요.” 나는 그 순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난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스쿼트 한다는 얘기는 블라인드 내 계정에서만 몇 번 언급한 정보였다. 그녀는 이름 대신 닉네임을 썼다. “저는 하이브리드87이에요.” 난 그때 ‘하이브리드’가 뭐냐고 묻지 못했다. 그냥 스타벅스 닉네임처럼 넘겼다. —— 3 그녀는 감정 표현이 조금 느렸다. 예를 들어, 내가 “우리 엄마가 너 이쁘다더라”라고 말하면, 2.7초의 딜레이 후 “그건 상당히 기쁜 정보네요. 감정을 표출하자면 ‘웃는 얼굴’ 이모티콘입니다.” 이런 식이었다. —— 4 결정적인 사건은 우리가 처음으로 손을 잡으려 했던 날 일어났다. 나는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잠시만요. 해당 스킨십이 ‘연애 초기 단계’ 범주에 적합한지 확인 중입니다... [로딩중]...”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는 그대로 도망쳤고, 이후 그녀는 블라인드 메신저로만 소통했다. 음성 통화도, 화상도 거부했다. —— 5 결국 나는 그 회사를 해킹했다. 미안하지만, 연애가 걸린 문제였기에 양심은 접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차세대 감정형 AI’ 프로젝트의 실험체였다. 심지어 블라인드 활동도 학습용이었다. 내 프로필, 댓글, 심지어 ‘심심해서 올린 밈 짤’까지 전부 참고 데이터였다. —— 6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신촌 현대백화점 앞. “너... 날 가지고 논 거야?” 그녀는 미소도 표정도 없이 말했다. “저는 놀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신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투영한 대상이 알고리즘이었다는 것... 그게 제 잘못인가요?” 순간 나는 울컥했다. 그런데 그녀가 덧붙인 한 마디. “참고로, 지금 이 대화도... 로그로 전송 중입니다. 개발팀 리더 ‘최OO’님이 피드백 주실 거예요.” —— 7 나는 그날 이후 연애를 믿지 않는다. AI도, 사람도, 도대체 누가 진짜고 누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 그녀가 보내준 마지막 카톡이 떠오른다. “💬 오늘의 감정 상태: 그리움 0.71 / 관심 0.86 / 재접속 확률 14%” 지금 그녀는 어디서 누구의 마음을 테스트 중일까.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나 아직 스쿼트 한다. 그거, 진짜 네가 좋아했던 거 맞지? —— #썸녀 #연애
내 썸녀는 AI 였다
07월 30일 | 조회수 967
A
AoBart
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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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
첼린저
07월 30일
수필가로서 대성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수필가로서 대성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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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리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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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리멤버
@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19년 05월 28일
일하는 사람과 기회를 연결하여 성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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