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다가 속 시원하게 얘기할곳이 없어 적어봅니다.
저는 6년간 창립멤버로 일했고 나름 회사가 투자도 잘받아서 서울시 광화문 한 복판에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 35명까지 늘었습니다.
일이 잘되었는데 대표끼리 이혼 소송이 나면서 말그대로 하루아침에 사무실이 사라졌습니다. 한 대표는 잠적을 했고 둘 사이에 불륜 소송, 자금 횡령 등 온갖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회사가 사라질 것을 미리 예견했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텐데 두 대표간의 싸움에도 저는 회사가 없어질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피땀 흘려 어렵게 일궈낸 회사였고 누구보다도 대표들과 24시간 붙어 일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회사에 가지고 있는 애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정말 회사가 없어지고 제가 두 대표 중 유달리 따르던 한 명은 마지막 인사도 없이 잠수를 타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회사는 저에게 당시 저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였습니다.
어린나이에 시작한 동업과 작은 성공에 눈이 멀어 정말 미래가 창창한줄 알았고, 모든것을 쏟아부어서 일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2-3일은 업무를 하다 밤을 새는것은 너무 당연했고 매달 사비 70-80을 들여 개인 공부를 더했습니다. 옷을 사도, 머리를 새로 해도 모든것이 회사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회사가 없어지니 그냥 제가 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말 없이 모든걸 정리한 대표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이후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 입사해 어느덧 1년 6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전 직장과 대비되는 안정적이고 규모있는 기업에 들어왔습니다. 업종은 완전 정반대입니다. 이전에 1년 중 반은 가 있던 해외 출장도 아예 없고, 영문 문서 쓸 일도 없으며, 외국인들과 새벽에 줌미팅 할일도 없고요. 일이 굉장히 평이하고 수월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직원으로써 과도한 책임감을 가져봐야 피곤해지는 상황과 회사생활 자체에 대한 짙은 회의감을 지우기가 힘듭니다.
스스로 아무 책임도 없이 이전에 가졌던 열정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은 채로 그저 월급만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한심하고 되고 싶은것도 없고 하고 싶은것도 없습니다. 연봉은 천 만원이 줄어들었고 해야할일도 줄어들었지만 모든게 무감각하고 무심하기만 합니다. 그때 배워둔 언어와 기술들을 전혀 쓸 곳이 없어 다 잊어버렸습니다. 아깝습니다. 무엇보다 언젠가는 나를 버릴 직장. 이 생각이 가득해서 회사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또한 사업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기존 사업이 어느정도 자본력과 대표의 기본 네트워크를 크게 활용한 사업이라 홀로서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냥 그때 창업의 시간이 제 인생에 독을 푼게 아닐까 할정도로 그 시간이 제게 너무 깊게 각인되어 쉽게 생각하고 살 수 있는것도 스스로 꼬아 생각하는것 같고요. 마음이라도 편하게, 지나간 시간을 그저 꿈에 불과했다 생각하고 사는 것이 맞는지, 그래도 아직 젊으니깐 그 시간을 잊지 않고 회사 밖 작은것이라도 도전하며 사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구구절절 두서없이 적었네요.
남들에게는 아무 문제 없는 삶 처럼 보이지만 무겁기만한 빈껍데기를 짊어지고 사는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제일 힘든것은 깎인 연봉과 같이 물리적인 것보다, 6년동안 가지고 있던 꿈을 스스로 단념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것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6-7년간 치열하게 일했던 곳이 이제는 사라졌음을 받아들이고 꿈도 단념시켜야 하는것이 2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쉽지가 않습니다. 컴퓨터를 하다 당시 제가 만들어놓은 여러 문서들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올정도입니다.
어디에 말할 곳도 없고해서 구구절절 적었습니다. 저랑 같은 경험이 있으신분들이 있으신지도 궁금하고요...다들 올 한 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창업 후 직장생활
01.07 00:25 | 조회수 1,154
늘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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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하늘
BEST힘내시라는 위로의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시간을 가지고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시간과 열정과 마음을 쏟은 만큼 마음과 정신을 다치신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 마음을 비우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팔이나 다리가 다쳐 흔히 말하는 깁스를 하면 재활도 깁스를 한 시간만큼 걸립니다. 그리고 사별하여 마음에 있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데도 같이 살아온 시간만큼 걸리지요. 아마 바쳐온 시간만큼 마음에서 비우고 떠나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최고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계속 외치고 의욕을 북돋는 것도 필요합니다. 필요하면 가까운 아내나 가족과 얘기하면서 풀어야 하구요. 저도 직장을 나와 1년 넘게 재 취업이 되지 않았을 때 힘들더군요. 그때 저를 위로하며 지지해준 아내가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삶의 무게는 나눌수록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당신의 지나간 세월은 낭비된 것이 아니고 당신의 삶이 성장할 밑거름이 됩니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요. 헛되게 살아온 것이 아니시니 반드시 그럽니다. 그리고 또 다른 창업의 기회를 얻게 될지도 모르지요.
부디 힘내시고 다시 마음이 회복되고 의욕이 승천하시는 한해 되기를 기도합니다.(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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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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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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