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에서 충격을 받았다는 글을 썼던 사람입니다.

12.09 01:36 | 조회수 1,254
남무남무
쌍 따봉
안녕하십니까. 월요일이 원망스럽게도 찾아와 버렸습니다. 단톡방에서 충격을 받았다는 글을 썼던 사람입니다. 주말 간 커리어나 거취 문제를 두고 고민이 많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 일자리를 옮길지 말지 고민을 나누고 혼자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덕분에 휴대전화는 일부러 가방 안에 두고 꺼내질 않았는데,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었군요. 새벽에 리맴버를 켤 때만 해도 이직/커리어 커뮤니티에 직업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만, 알림이 100개가 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슈 토론방은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네요.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듭니다. 달린 댓글들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오랜만에 쓴 글이 의도를 전달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어느 어르신께서 점잖게 써 주신 글의 '그 욕 먹는 세대'라는 앞머리가 무거웠습니다. 그분들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내용을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제가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지는 데 실패했고, 혓바닥으로 먹고사는 직업도 10년을 가지 못하고 방향을 잃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생각을 정리하고, 전하고, 확장하는 종류의 일에 소질이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다음으로는 제 글'역시' 편향되어 있다는 비판의 글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 글들은 좀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뭐. 지난 글의 머리에서도 밝혔다시피, 저는 기계적 중립을 지킨다고 해도 그의 성향이 묻어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근래 유행하는 '팩트'라는 표현이 참 입안에 가시처럼 거슬립니다. 수학이나 물리학의 영역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머리에서 나온 글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팩트'가 아닌 '트루'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 때문에 너는 중립이 아니라던가, 기계적 중립 운운하지 말라던가, 하는 글들은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서 쓴 글의 내용은 ‘나는 그 방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데, 기계적 중립을 지킨다고 하던 분들의 의견을 듣고 충격받았다’라는 것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제 글솜씨가 모자라서 버리진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제 글에서 잘못된 부분은 위에서 밝혔다시피 컨텍스트를 잘못 전달한 것이지, 성향을 숨기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평소에 하는 고민은 상대의 맥락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워딩을 일부러 붙잡고 늘어지는 주장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 큽니다. 이 부분은 '사안별로 다르다' 정도의 원론적 결론 밖엔 내지 못하여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은 워낙 큰 문제이다 보니 결국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비슷한 문제가 터지는 모양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하게 된 질문은 '나는 무엇에 그렇게 놀란 것인가'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글이 나온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이번 사건의 특이한 성격도 한몫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저 스스로 맥락을 잘 형성하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크겠지요. 글을 쓴 당시에는 놀라운 감정만으로 글을 썼습니다만, 나는 무엇 때문에 놀란 것인지 맥락을 확실히 하고 살을 붙여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무엇에 그렇게 놀란 것일까요? 여러 의견에서 말씀해 주셨지만, 저 역시도 평소에는 그냥 각자의 입장과 의견이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가기는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부동산 단톡방에서 거르고 간다고, 그런 방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뻔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이 보였습니다만, 꼭 특정 집단에서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며, 그것이 그리 놀랍거나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아주 위중하고 심각한 문제라 할지라도 그가 그런 의견을 가졌다는 것, 혹은 의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인생이나 인격과 동치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쓴 글 역시, ‘지금 이 상황에 의견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거나 밝히지 않는 자들을 옹호하는 것은 도덕적이지 못한 거야!!’ 라는 비난은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역시 제 글솜씨가 모자랐기 때문에 걱정조차도 의도대로 흐르지는 않았습니다. 원래의 고민으로 돌아와서, 저는 무엇에 그렇게 놀랐던 것일까요? 저는 앞선 글에서 정체성 정치라는 표현을 부정적으로 사용하였고,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만, 이에 대한 고민만으로 여기기엔 좀 부족한 감이 듭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미국이나 유럽에서 정체성 정치가 확장되어 가는 것을 보았고, 우리도 그런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정체성을 바탕으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긴 합니다만,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가능한 이것을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이 주류를 차지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지나면서 거대서사의 시대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존중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지만, 이것이 주류정치를 차지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든, 환경주의든, 인종 문제든, 심지어는 최근에 보수주의조차도 이런 흐름에 합세했지요. 지난 글에서 ‘요즘’ 진보 이야기 하는 분들과 정서나 생각이 다르다고 느낀다고 썼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저는 저런 인간적 한계에 대해 가능한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만, 요즘 분들은 멀어질 수 없는 문제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에대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여기는 모양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서사에 대한 태도 문제는 진보냐 보수냐 보다는 오히려 시대감각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앞에 쓴 글에서 밝혔듯, 저는 이런 흐름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제가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이 주류로 올라오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다른 거대서사 문제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라 여긴다고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후쿠야마의 말대로요. 제 생각에는 이 부분에서 전달에 실패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더불어 이 부분에 대한 인식에서 저의 글에 많은 비판을 가해 주셨던 분들과 견해차가 있는 것이고, 나아가 제가 정세의 흐름을 잘못 파악한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거대서사의 문제가 안정궤도에 오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과거의 테제가 먼지 속에서 잊혀 가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시는 것 같고, 이런 분노가 전세계적으로 공유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미국 대선 결과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내각도 붕괴했죠. 결국 우리가, 아니. 제가 폐기된 것으로 생각했던 주제가 누군가에게는 참을 수 없는 답답함으로 다가왔다는 것이고, 이에 대한 담론을 나눌 때 우리가 이뤄두었다고 생각했던 신뢰의 전제조건들, 제도적 디딤돌들이 생각보다 힘없이 무너진다는 것 자체에 놀랐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어느 계층, 어느 세대의 잘못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우리가 엄청난 저신뢰 사회에 살고 있으며, 저신뢰 사회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경제영역을 넘어서 정치영역에서도 치러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도 크다는 것에 대해 놀랐던 것이죠. 지금 기분은 오랜만에 먹은 기름진 음식 때문에 배탈이 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느 분께서 인터넷 게시판에 정치 관련 글을 쓴 적이 없어야 중립적인 것 이라고 비웃어 주셨습니다만, 그 의견에 반대하는 저는 역설적으로 20대 후반을 지나면서 국내 정치에는 완전히 관심을 끊었었습니다. 어디 유명한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데서 활동해 본 적도 없고 말이죠. 대학 시절에는 학생회 활동도 했고, 정치문제로 자취방에서 막걸리를 까면서 새벽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 개인적으로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되었고, 대승적으로는 과학이나 테크, 해외정세 분야에 오히려 관심을 가지고 소식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국내 정치는 죽은 뉴스였어요. 그동안 국내에도 많은 이슈들이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갈등이 표면화되었지만, 관심이나 의견을 가지게 되질 않았습니다. 인공지능, 로봇, 차세대 대전략 같은 이야기가 훨씬 흥미 있었을 뿐 아니라 결국 국내 정치판이 어떻게 아웅다웅하든 길게 보면 저런 문제들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참 기술만능주의, 국제주의 같은 것에 충실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눈길을 끌게 된 국내 정치 사건이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국내의 사건이나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거나 의견을 가지신 분들과의 괴리감이 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이 끌려 나오는 화제들이 참 낯설게 느껴지네요. 3p 바인더를 배우면서, 실천하고자 유연근무로 확보해 둔 월요일 아침을 너무 많이 사용해 버린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리멤버에 쓰려고 마음먹었던 글은 직업에 관한 고민이었는데, 이것도 오늘 쓰지는 못할 것 같고요. 잠시 이슈에 대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화요일이나 수요일즘 개인적 고민을 쓰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 피곤과 아쉬움으로 시작하는 월요일 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12시간쯤 뒤에는 시작된 한 주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했던 월요일로 기억되시길 바랍니다. 모두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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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7
포테토스틱
BEST정독했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계신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느낍니다. 누군가의 절대적인 잘못도, 절대적인 공로도 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이 복잡하게 연결되어있는 사회, 그럼에도 ‘팩트‘라는 편향된 인지의 결과를 가지고 다투는 사회, 그 결과 말씀하신 저신뢰가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사회에서, 우리는 모든 분야에 걸쳐 적절한 이해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저는 글쓴이님처럼 글을 잘 쓰진 못해서 제대로 설명은 못하지만, 제가 가진 고민과 매우 흡사한 고민을 하고 계시다는 점에서 큰 동질감을 느낍니다. 매스미디어 뿐 아니라 개인화된 미디어들 조차 각자의 편향된 인지로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우리는 항상 내가 가진 인지적 결과가 적절한가에 대해 늘 고민하며 살아야하는 것 같습니다. 뭘 그리 복잡하게 사냐 말은 하지만, 자기가 가진 생각은 바꾸려하지 않는 그런 분들. 결국 본인이 즐겨보는 TV채널의 뉴스엥커의 말과 본인의 생각이 일치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소신에서 나온 결과인양 사건을 해석하는 모습에, 가끔은 내가 이들과 어울려 살아야한다는 사실에, 피하기만 할 수 없는 어떤 부담같은게 느껴집니다.
12.0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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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션된 회사에서 재직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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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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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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