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는 모든 것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이 슈퍼맨일 수는 없으니 모든 것을 전문가 수준으로 알 수 없다. 하지만 각 부분의 전문가와 최소한 이야기는 통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면 그래야 계획을 세우고 비용을 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개발자가 아니어서요. 개발은 잘 몰라요."
10년 가까이 개발을 하면서, 저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 예비 창업자를 너무 많이 봤다. 직장 다니던 시절 자신의 직함 뒤에 숨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만드려는 사업에 대해서 비용을 계산하고 계획을 세워야하는데 이걸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카페 창업으로 비유를 하자면 자신은 바리스타가 아니니 커피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고 하는 것과 똑같다. 의류 브랜드 창업하는 사람이 저는 의상 디자이너가 아니니 옷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하면 다들 뜯어 말릴 것이다. 근데 왜 이게 웹이나 앱으로 넘어오면 개발은 어려우니 몰라도 되는 것이 되어버리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비용을 산정할 수 없는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개발에서 말하는 비용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man/month다. 인력과 시간을 투입하여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예비 창업자들은 알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만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욱여넣은 기획서를 완성본이라고 들고 온다. 이대로 만들면 대박이라고 흥분해서 비즈니스에 대해 설명한다. 어찌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강남에 땅사서 꼬마빌딩 100억 짜리 빌딩을 완공하면 대박난다고 하는 것과 같다. 문제는 예산을 달랑 10억만 들고 와서 100억짜리 내놓으라고 하니까 그렇다. 건축회사 가서 이렇게 말하면 미친놈 취급 받으면서 꺼지라고 할거다.
이제 일반적인 창업 아이템을 보자. 서버가 필요한 간단한 어플리케이션을 만든다고 치자. 그러면 최소 개발자는 서버/안드로이드/아이폰 이렇게 3명이다. 이들이 1달씩만 투입되도 벌써 3M/M이다
근데 보통 간단한거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개발 기간이 6개월, 길면 9~12개월까지 걸리는 일이 많다. 6개월만 해도 18M/M이고 12개월이면 36M/M이다. 18M/M은 결코 작은 프로젝트가 아니다. 개발팀장이나 경험많은 PM/PL도 긴장하고 매니징해야하는 볼륨이다.
여기서 문제는 또 그들만의 기적의 계산법이 나온다는 것이다. 예비 창업자라 돈을 줄 수 없으니 사이드 프로젝트로 직장 다니면서 주말에 하루씩 시간내서 작업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발기간을 6개월로 잡아버린다.
주5일 일할 것을 주1일만 일하니 5달을 일해야 1MM이다. 그렇게 6MM씩을 채워야하니 30개월, 2.5년이 걸린다. 주말에 하루씩만 일해서 6개월만에 서비스가 하나씩 뚝딱뚝딱 나올거면 수많은 IT회사 SI회사는 바보 머저리여서 비싼 인건비 주며 주5일씩 개발자를 앉혀놓겠는가.
충분한 인력과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크고 복잡한 서비스를 제작하려는 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만용이다.
빌딩을 짓는데 의뢰인이 "지하주차장도 있어야 하고요"만 말하면 어떻게 될까? 다 만들고 났더니 왜 지하1층만 있냐고 자신은 최소 지하 3층까지는 생각했다고, 차량용 엘리베이터는 왜 없고 슬로프만 있냐고 뒤늦게 말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당할 것이다.
아니 차라리 지하 1층만 나온게 다행일수도 있다. 지하 1층도 간신히 지을 예산만 있으면서 무리하게 지하3층까지 파고 기초 공사 하다가 예산 부족으로 공사 중단되면 그대로 아웃되는 것이다.
의뢰서에 적힌 지하주차장 5글자가 실제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서 그 5글자 속에 숨겨져 있던 것들에 오만가지 문제가 빵빵 터질 수 있다. 지질조사도 하지않고 무작정 파다가 지하수층 잘못 건들이면 추가비용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똑같은 일이 기획서와 요구명세서에서도 벌어진다. 지하주차장 5글자처럼 몇줄 찍찍 휘갈긴 기능이 당신의 사업을 그대로 무너뜨리는 싱크홀이 될 수 있다.
가령 토익 문제 푸는 앱을 만든다고 가정을 해보자. 최초 요구사항은 문제가 업데이트 되면 랜덤하게 풀어서 채점을 하는 앱이었다. 클라우드 스토리지에 파일 올려두고 앱에서 없는 파일만 내려받아 추가해서 문제목록을 업데이트 하는 식으로 만들면 서버리스로 개발이 가능하다. 이렇게 만든게 iOS개발자 AOS개발자 각각 투입한거면 무려 2MM이다!
근데 그렇게 다 만들고 나니까 랭킹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어찌어찌해서 랭킹서버를 추가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멘토링 세글자에 꽂혀서 멘토와 멘티가 있고 취약한 부분을 멘토가 잡아줄 수 있게 기능을 뒤늦게 넣자고 하면 위의 지하주차장을 왜 1층만 지었냐고 하는 것처럼 정신병자가 되는 것이다.
멘토링 시스템까지 들어가고 취약부분을 체크하게 하는 순간 개발 규모는 몇배로 뻥튀기 되는 것이다. 단순히 문제를 랜덤하게 풀라고 보여주고 끝이 아니라, 문제를 유형대로 카테고리를 나누고 이 사람이 어떤 문제를 언제 어떻게 풀었는지 기록을 남기고 이를 통계 내야 하는 것이다. 기존에 2MM으로 만들었던 서비스가 무리한 기능 추가에 대대적으로 갈아엎으면 심한 경우 6개월씩 총 18M/M으로 10배 가까이 비용을 허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건물을 다 짓고 나니 지하 주차장 층 수 늘려주세요. 엘리베이터는 왜 없고 계단만 있나요? 추가해주세요 하는 것과 똑같다. 이를 반영하려면 건물을 뜯어버리고 새로 다시 짓는 수밖에 없다. 겉보기에는 비슷해보여도 클라이언트에서 돌아가던 로직을 서버로 옮기려면 서비스를 다 뜯어고쳐야 한다.
보통 이렇게 이야기하면 몇몇은 노골적으로 적개심까지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꿈과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막 위에 펼쳐진 신기루일 뿐, 그 쪽은 끝없 이 펼쳐진 광야인 것이다.
바리스타에 적개심을 보이며, 커피 냄새 맡기도 싫어하는 사람이 카페 창업을 한다면 그 결과는 뻔할 것이다. 예산과 비용은 제대로 따지지도 않으면서 건축가가 건물 안만들어 준다고 하소연 하는 사람은 결코 완성할 수 없을 것이다.
예비 창업자들에게 고하는 글
2023.10.07 | 조회수 1,563
싱글벙글지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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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onago
BEST깊이가 있는 좋은 글이네요. 역사상 가장 코딩 배우기 쉬운 시대인데 요즘도 IT 서비스 만들려고 하면서 코딩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2023.10.0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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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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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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