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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완전히 다시 정의할 때가 왔다

2023.02.12 | 조회수 1,204
이재현
프리랜서 활동
글쓰기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다! 문인과 학자들의 죄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오랜시간동안 글쓰기는 그들의 것으로, 어릴때부터 읽기와 쓰기 훈련을 받을 수 있었던 정말 소수의 엘리트층의 것으로, ‘심심한 사과’와 ‘북침/남침’을 이해하는 특정 계층의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다른 여러가지 배경이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글쓰기’라는 산업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글에서는 ‘글쓰기’를 완전히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매우 소박한(응?) 주장을 펴볼까 합니다. 조금 많이 나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글이 안전한 글보다 훨씬 더 좋다고 보고 있습니다. 동의하진 않더라도 새로운 이야기를 주의를 환기시키고 사고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태초에 종이값이 비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권력은 지식과 동맹을 맺고 종교, 역사, 신화, 기록을 통제했고, 인간의 머리를 떠도는 수많은 상념과 말로 내뱉어지는 수많은 이야기 중 잉크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이 선택한 것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공동체가 종이매체를 만든 것이 아니라, 출판자본주의가 공동체라는 관념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인간들이 하나의 공동체이며 공동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관념은 역사적으로 항상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 만들기’는 매우 비용이 높은 행위이며, 특히 이를 구술로 유지하는데는 오랜 시간과 높은 비용이 듭니다. 어떤 학자는 책에서 ‘우리’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해 공동체가 상상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정치적 공동체가 생겨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잉크의 힘은 강력했고, 모든 생각이 글로 쓰여질 수는 없었습니다. 디지털 매체가 나오기 전까지 인쇄문화는 따라서 근본적으로 생각 시장의 중간상인들이 무엇이 글로 쓰여지는지 ‘게이트키핑’을 하는 방식으로 통제되었습니다. 출판사는 어떤 책이 출판될지를 결정합니다. 매체는 누구의 어떤 생각이 어떤 방식으로 지면위에 올려질지 통제합니다. 문학상이나 문학 출판사는 누구의 작품이 주목을 받을지, 누가 ‘글을 써서 먹고 살아도 되는 자’인지 게이트키핑해왔죠. 종이 지면은 그 물성 때문에 ‘유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산업구조가 아닌가 합니다. 구조상 모든 이야기를 다 출판할 수는 없습니다. 베어 넘길 수 있는 나무에는 한계가 있고, 유통할 수 있는 신문이나 책의 양에도 물질적인 제한이 걸리며, 모든 글을 다 편집하고 선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좋은 글’에 대한 높고 전통적인 기준이 개입합니다. 모든 것을 출판할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는 ‘좋은 글’만 출판할 것이다. 매체의 정치적 입장이나 문학상의 특정한 기준, 출판사가 중요시하는 주제 영역이나 필자군 등이 등장하고, ‘객관적 선택기준의 정당화’가 이루어집니다. 물론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고 물리법칙은 무한한 그 무엇도 허용하지 않기에 어떤 도메인의 자원이든 골라서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지식은 항상 권력과 결부되었고, 종이매체의 게이트키핑으로 인해 ‘지면권력’이라는 새로운 힘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종이 위에서 말할 수 있는 자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이죠. 모두가 종이 위에 내 생각을 잉크로 올릴 수는 없는 시대였으니까요. 게이트키핑은 항상 특정한 사회문화적 기준을 가지기 마련이라서, 지나치게 새로운 생각이거나 전통적 가치와는 너무 동떨어진 것들은 선택되지 않기 마련입니다. 저는 푸코가 젊은 시절에 주변 학자들에게 매몰찬 평가와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니체 같은 철학자의 글도 죽은 후에야 다시 발견되고 인정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게이트키핑이 항상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이트키핑의 기준은 반드시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따라서 반드시 누군가의 목소리는 배제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물리법칙에 의한 것이라서, 누가 게이트키핑을 하건 상관없이 발생하는 문제일 겁니다. 권력을 쥐는 순간 매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권력의 딜레마를 깨닫게 될테니까요. 디지털 매체는 이런 기존의 ‘글쓰기 시장의 중간상인’의 힘을 조금씩 약화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지면권력’은 이제 ‘주의권력’으로 옮아가는 형상입니다. 종이 위의 잉크를 읽는 인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읽기와 글쓰기를 정규 교육프로그램에 넣어서 제공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죠. 공부하는 것은 힘든 것인데 너희는 약 16년 동안 이걸 달달 외워서 시험을 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한다고 가둬놓고 고문했으니, 인간들이 공부하기 싫어하고 책을 피하는 것이 정말 놀랄 일일까요? 그렇지만 누구나 핸드폰과 노트북은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플랫폼에서 ‘팔로우’를 통해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행위는 자기선택적입니다. 팔로워수가 허상이고 좋은 지표가 아니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기존의 ‘지면권력’과는 ‘주의권력’이 좀 다르게 작용한다는 진리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산업의 구조상 중간상인의 힘이 약해지고, 소비자, 수요자, 독자의 힘이 더 강력해진 것이죠. 왜냐하면 독자가 직접 팔로우하고 언팔로우하고, 재미없으면 읽지 않을 것이며, 가르치려고 해서 짜증나면 무관심하게 반응할 것이기 때문이죠. 매우 거칠게 말해본다면, ‘지면권력’이 계몽하고자 한다면, ‘주의권력’은 매혹하고자 합니다. 기존의 지식은 희귀한 것이었기에 엎드려서 읽고 외우고 답을 맞춰서 예쁨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식이 너무나 많아졌기에 오히려 힘은 독자에게 넘어갔고, 이제 독자가 무엇을 읽고 무엇을 배울지, 무엇에게 관심을 줄지 결정합니다. ‘너 이 새퀴들 왜 제대로 안읽고 왔어! 텍스트라는 것은 아주 케어풀하게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뚝배기를 깰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죠. 고객이 왕이고 독자가 주인님이기 때문에, ‘가르치려는 강박’을 버리는 자가 더 좋은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학술논문의 평균 인용수는 제로에 수렴한다고 합니다. 박사논문이란 것은 원래 전 우주에서 1명의 뇌를 8년동안 잠식하다가 4명의 뇌를 스쳐지나가는 그런 텍스트입니다. 학술지식이란 것은 원래 전문가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으로, 일반 대중과 대화하고자 한다면 완전히 다시 써야 하고, 힘이 디지털 매체로 넘어가면서 괴리가 커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절대다수의 인간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깊은 인사이트를 담고 있는, 말하자면 ‘유료구독’을 할만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제 눈에는, 아직 많지 않아 보이거든요. 왜냐하면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난해하게 써도 괜찮았고, 누군가는 ‘비평’이나 ‘리뷰’라는 이름으로 ‘오 이거 재밌다’고 평해줘서 논문에 실어줬기 때문에. 이런 맥락에서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중산층입니다. 대학교육에서 책읽기와 글쓰기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직접 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게 살펴보고 정말 도움이 되는 생생한 피드백과 지원, 지지, 응원을 받을 수 있었던 학생이 몇명이나 될까요? 많은 경우에 글에 대한 피드백은 ‘틀린거 찾아 빨간색으로 표시한 후에 뚝배기 깨기’ 방식으로 이뤄지며, 이런 혹독한 훈련은 어릴 때부터 멘탈이 훈련된 일부 엘리트나 글쓰기 ‘재능’이 있는 소수의 사람이 아니라면 버텨내기 어렵기도 하고, 사실 그냥 짜증나잖아요? 아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썼는데, 그걸 들어줄 생각이 없는 사람이 문법만 고쳐대고 있으니. 지식을 생산한다며 ‘글쓰기’를 어렵고도 난해한 ‘작품쓰기 올림픽’으로 만들어버린 많은 사람들은 죄를 안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글쓰기는 너무 어렵고, 내 글은 쓰레기이고,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으니까요. 이 지점에서 고찰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 시장 생산과 공급의 밸런스입니다. 어떤 필자는 ‘사람들이 읽지 않고 쓴다’며 한탄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저는 ‘읽고 써야 한다’는 이런 강박이 놓치고 있는 몇가지 지점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 글쓰기의 핵심 원료는 다른 텍스트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입니다. 보통 많이 읽고 써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뭘 읽지도 않고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반드시 나쁜 현상이냐,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상 첫번째로 쓰인 책으로 돌아가볼까요. 읽고 참고할 좋은 글이 없는데, 뭘 보고 썼을까요? 그 인간은 자신이 듣고, 말하고, 경험한 삶의 진리를 글로 옮겼을 겁니다. 텍스트는 인간의 경험을 변환해 ‘잉크화’한 상징체계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죄송하지만 읽기와 쓰기의 밸런스는 100:1이 되어야 합니다.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리세요’라고 말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의 여정에서 보면, 일단 좀 쓰다가, 아 써놓고보니 궁금해지는 내용도 있고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공부를 해볼 생각이 생겨서, 좀 읽다가, 좀 더 쓰다가, 좀 더 읽는 흐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엎드려서 100권을 먼저 읽으라는 진리는 사실 문인이나 학자가 되기 위해 훈련하는, 말하자면 ‘전문가’에게 통용되던 진리이고, 유용할 수 있겠습니다만, 막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한데 3대 500Kg을 얘기할 수는 없는 법이죠. 시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파트너입니다. 오 이거 재미있지 않아요? 함께 해봐요! 조금 더 가볼까요? 이 부분이 재밌군요. 이 얘기를 더 해주세요. 이 자료를 보시면 더욱 풍부한 얘기를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둘째는 ‘인용주의’입니다. 업계비밀입니다만, 사실 정말 많은 글들이 영어로 된 다른 거 읽고 적절히 번역한 것입니다. ‘오리지널한 사유’란 것은 매우 비용이 높기 때문이죠. 그럴듯해보이는 사례, 책, 데이터, 교수, 기관 등을 인용하면 그래도 뭔가 있어보이기 때문에, ‘인용의 강박’에 빠지기 쉽죠. 소재로 삼기 위해 조각조각 잘라내어 모자이크를 만들다보면, 어느 순간 키메라가 되어있고, 그 글에 ‘나만의 경험과 생각’이 들어갈 여지는 매우 작아집니다. ‘읽고 써야 한다’는 강박은 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남의 목소리들, 이미 쓰여진 글을 읽으려다보니 잘 쓴 글이 정말 너무 많고, 독자 입장에서 왜 내껄 봐야하는지 정당화할수 없어서, 적당히 거인들의 생각을 인용하는데서 끝나거나, 펜을 놓거나, 탈모가 오는 거죠. 제 생각입니다만, 인간은 삶을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이미 누가 만들어놓은 체계에서 수십년 혹독하게 훈련해야만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고, 그런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가장 위대한 사람들은 학위나 자격증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인용을 덕지덕지 붙여 자신의 메시지를 모자이크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지저스는 신학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붓다는 남이 써놓은 불경을 달달 외워서 읊지 않았으며,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공학 박사 받고 평생 논문만 쓰지 않았습니다. 글쓰기 하나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게이트키핑의 취향에 맞지 않았던 글, 아직 출간저자가 아니었던 사람들, 자신의 삶을 창조하겠다고 결정한 사람들은 디지털 글쓰기를 통해 기획사 없이 직접 데뷔했습니다. 제 동료 중에도 이런 분들이 계시고, 해외에서도 이런 사례가 떠오릅니다. 한국에서 에세이 유료구독 서비스를 처음 런칭한 작가의 이름도 떠오릅니다. 뉴스레터로 유료구독자를 모아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들은 모두 독자를 강조합니다. 누구도 이들을 게이트키핑할 수 없고, 인류 역사상 해당 주제로 쓰여진 모든 책을 읽고 인용해야 한다는 강박 따위에 이들은 시달리지 않습니다. 탈모로부터 자유로운 작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들은 이미 글쓰기 시장이 변화하고 있음을, 글쓰기를 완전히 새롭게 다시 정의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결국 글은 독자가 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메시지가 글로 쓰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글 중에서도 좋아요, 댓글, 구독을 받는 것들은 독자가 선택한 글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레거시 지식이 채워주지 못하는 공백을 새로운 메신저들이 채워주고 있고, 독자들은 이제 팔로우를 통해 투표합니다. 난 당신의 메시지가 마음에 들고, 이런 글이 좋으니, 내가 좋아요, 댓글, 구독을 통해 당신을 지지하겠어. 자, 나에게 더 좋은 글을 바쳐라! 그렇지 않으면 언팔하겠어! 키보드에 손을 올릴 순간 작가는 자신이 권력을 쥐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 나는 메신저다. 나에게 메시지가 있는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람들을 매혹해 더 좋은 삶으로 이끄는 글을 써나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편견을 깨주고 공감의 폭을 넓히며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백익무해한 글을 쓰려면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는, 이제 이분법적인 사고 습관과 패싸움 정치, 구태의연한 사고와 실천습관에서 벗어나 빠르게 성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편견을 빠르게 깨야 하며, 경험해본 적이 없는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며, 공감을 빠르게 확장해야 하며, 듣지 않았던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며, 인류의 존멸여부를 결정할 중요한 아젠다를 배워나가야 하며, 젊은 사람들을 가로막지 않고 함께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관점과 사고를 업데이트해서 문제해결력과 소통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이야기, 정말 좋은 글들이 우리를 매혹하고 자극하며 경쟁해야 합니다. 글은 결국 독자가 쓰는 것이지만, 메시지는 작가의 몸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시작하는 작가들에게 다른 메시지가 나가야 합니다. 100권 읽고 쓰라는 얘기 말고, 아직 들어보지 못했지만 당신의 몸이 담고 있는 현장의 그 이야기를 지금 시작해달라고, 내가 읽어주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저보다 젊은 주니어분들의 ‘첫번째 독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 이유입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왜 하고 있으며 그것이 왜 세상에 도움이 되는지를 깨닫는게 가장 좋은 도구는 글쓰기이기 때문이고, 글이 쓰여지려면 첫번째 독자가 레드카펫을 깔고 폭죽을 준비해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 지도교수님이셨던 분께서는 학문적으로도 매우 뛰어나시지만, 교육자로서도 성심성의껏 학생과 관계하기로 유명한,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셨습니다. 내가 써나가고 싶은 이야기에 진지한 관심을 가져주고, 함께 고민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셨죠. 특히 학부 학생들의 프로젝트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셨고, 가르침을 질문과 호기심의 형태로 전달해주셨습니다. ‘궁금하게 해서 알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진정한 의미의 ‘교육’을 실천하고 계셨죠. 교육이나 교육자라는 단어는 정말 죄송하지만 그냥 버려도 되고, ‘당신의 성장과 작업에 관심과 기대를 갖고 진심으로 도와주는 씽킹 파트너’가 우리가 모두 원해왔던 사람이라는 진리를 깨달았던 것은 그 때였던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완전히 다시 정의할 때가 왔다는 제 주장은 이런 의미입니다. 홀로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파트너들과 함께 선의의 경쟁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으로, 다 배우고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흐름 속에서 배우면서 익힌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으로, 좋은 글의 정의가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의 삶에 기여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과정으로.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보다 많아진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겁니다. ‘쓰기’ 시작하면 ‘아 더 읽고 더 좋은 글을 쓰고싶다!’는 열망이 떠오르기 마련이거든요. 내 이야기를 쓰다보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떤지, 우리가 더 공명하는 더 넓은 이야기를 시작할 수는 없는지, 우리가 함께한다면 인간의 삶을 얼마나 더 개선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 마련이거든요. 그러니 다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잘못된 교육문화로 포기했던 지식 성장의 길을 함께 다시 걸어보는 것이죠. 이젠 그 누구도 억지로 달달 외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너는 좋은 학생인데 너는 별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점수로 줄세운 뒤에 이 뒤로는 패배자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글쓰기 학원 따위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아직 미약하지만 저도 젊지만 성장욕구가 있는 분들의 첫번째 독자가 되어 함께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더 좋은 이야기가 필요하니까요. ‘글쓰기’를 새롭게 써나가는 여정은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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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wha
2023.02.14
BEST좋은 글은 읽기 쉬워야하고, 빠져들어야하고, 흥미가 있어야 하는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복권에 당첨 되려면 복권을 사야하는 것 처럼 좋은 글이 되려면 읽혀야하는데 이 글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10분짜리 샹송보다 15초짜리 광고CM송이 임팩트있듯 독자를 위해 짧아도 빠져드는 글을 쓰시는 작가가 되시길. -지나가는 영업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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